증시에서 '약육강식(弱肉强食)' 정글의 법칙이 재현되고 있다. 코로나19로 넘치는 유동성으로 이 때다 싶어 '상장 파티'를 벌였던 대기업들은 돈 풍년에 화색이 돌고 있지만 이른바 ‘따상’을 인생일대의 기회로 여겼던 ‘개미’들은 깊은 손실에 신음하고 있다. 개미들은 주가 조정을 각오했지만 이렇게까지 갑자기 무너질 줄은 몰랐다며 망연자실이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하지만 시장이 너무 기울어졌다는 것이 문제다.
카카오는 사업을 쪼개고 또 쪼갠 뒤 계열사를 잇따라 상장시켰다. 카카오처럼 자회사를 단기간에 연속해서 상장하는 케이스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경쟁사인 네이버와 비교하면 카카오의 상장 정책은 더욱 도드라진다. 코로나 이후 일본에선 카카오와 반대로 자회사를 상장폐지하는 곳이 늘어났다. 카카오의 계열사 상장 러시에 ‘파티’, ‘잔치’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미국 금리인상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 경고음이 커졌지만 상장은 지속됐다. 결국 최근 증시 급락 충격파로 수많은 ‘카카오 강제 존버’가 양산됐다.
모럴헤져드도 심각하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상장 한 달도 안돼 900억원어치의 지분을 대량으로 팔아치웠고 이후 주가는 폭락했다. 뒤늦게 김범수 의장이 사과하고 대책을 밝혔지만 '먹고 튀었다'는 비판여론은 가시지 않고 있다. 골목상권 침탈 논란과 관련 "혁신과 성장의 상징이었던 카카오가 탐욕과 구태의 상징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카카오가 이번에는 '주식시장과 투자자를 교란했다'는 오명을 쓰게 된 셈이다.
크래프톤은 공모가 대비 반토막이 난 주가로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문제는 애초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크래프톤은 상장을 밀어붙였고 현재 개미들은 쪽박을 차게 됐다. 우리사주를 받은 이 회사 직원들의 손실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처럼 알짜사업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할하면서 개미들의 ‘뒤통수를 친’ 사례도 있었다. LG화학 투자자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 분할되고 최근 상장이 본격화되면서 연타로 주가급락 된서리를 맞았다. 물적분할로 분할돼 신주 한 주 못받는 이들이 LG에너지솔루션 분할에 대한 대가를 고스란히 떠않은 셈이다.
사실상 '오너일가의 기업 상속용'이라는 비판을 받는 곳도 넘친다. 2월 상장이 예고된 현대엔지니어링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영 지배력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현대엔지니어링이 현금성 자산 등 2조원대의 유동성을 확보한데다가 기존 주주들의 주식을 파는 '구주 매출’을 통한 자본 조달 비중이 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2%씩을 보유중이다.
상장을 준비중인 CJ올리브영도 CJ일가 3세인 이경후·이선호 남매가 주요 주주다. 재계에선 CJ올리브영이 이들 남매의 CJ 지분 확대 등 지배력 확대의 화수분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장품이 주력이었던 CJ올리브영이 최근 술까지 판매하고 나서면서 골목상권이나 중소상인들과 경쟁을 가속화하는 것도 상장 전 기업 가치 부풀리기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두 회사 모두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제기된 곳이다. 그동안 재계에선 내부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로 기업을 키우고 모회사와의 합병이나 상장을 통해 오너일가 기업대물림을 마무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비슷한 재벌가의 편법승계의 공식중 하나로 꼽혀왔다.
정도(正道)를 벗어난 대기업과 재벌가의 상장이 이어지고 개미 피해가 늘어나면서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 스스로에게 탐욕을 자제하라고 요구하기에는 이들의 행태가 상식을 한참 벗어난 탓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복원해야하는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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