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우리나라 전기차들은 모두 제외됐다. 미(美) 국세청(IRS)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 모든 외국산 전기차 브랜드는 제외되었고 자국산 전기차 16개 모델에 대해서만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애초 혜택 대상이 25개에서 16개로 줄어들었지만 이미 예상대로 외국산 브랜드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IRA 세부지침의 전기차 보조금의 범위는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향후 확대) 이상 사용했을 경우 3750달러, 미국이나 FTA 체결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광물을 40%(향후 확대) 이상 사용할 경우 3750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GM그룹 산하 전기차 모델의 대다수와 미국에서 인기가 많은 테슬라의 모델3와 모델Y 등 10개 모델이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 그리고 포드와 크라이슬러 계열의 6개 차종은 3570달러의 보조금 혜택을 받게 되었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조립되는 현대차의 전동화 모델 GV70의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이었으나 세부 지침이 나온 후 제외되었다. ‘현지 조립’이라는 요건은 갖추었지만, GV70에 들어가는 SK온 배터리가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해야 한다는 IRA의 요건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미 지역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폭스바겐과 닛산 등도 배터리 혹은 부품 요건을 맞추지 못해 보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RA 세부지침 발표 직후 현대차 그룹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차분하다. 현대차 그룹의 브랜드에 대한 보조금 제외가 이미 예견되었던 만큼 이번 조치가 단기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장에서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브랜드 모두가 제외되었기 때문에 경쟁력 측면에서 오히려 해볼만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전기차를 리스로 구입할 경우에는 IRA 세부지침에 포함되지 않아 보조금 7500달러 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새로운 시장으로 확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략도 리스 시장으로 진출 강화와 미국 내 생산 공장 완공에 속도를 내는 방안 등 두 갈래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리스(상용차) 판매 비중이 약 30%에 달하는 만큼, 5%에 불과한 현대차 그룹의 리스 판매 비중을 높여 나가 보조금 제외의 충격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조지아주에 건립 중인 전기차·배터리 합작 공장의 완공에 속도를 높여 미국 내 전기차 생산 일정을 앞당겨 전동화 전략을 발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도 시장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 그룹의 전기차가 보조금 지급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산업부는 미국의 제외한 모든 나라의 브랜드가 제외되어 우리 제품의 “미국 시장 내 경쟁 측면에서 크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현대차 그룹의 전기차가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현재 직면한 가격 충격만 잘 극복한다면 미국 시장 안착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IRA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2018년 초 미국이 자국 세탁기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삼성과 LG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한국산 세탁기의 연간 수출쿼터 물량을 120만대로 제한해 14~20%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넘어서는 물량에 대해서는 30~50%의 높은 관세를 물도록 했다. 이에 우리 가전업체들은 미국 내 생산 공장을 가동해 세이프가드를 무력화화는 동시에 혁신적인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현재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 1위(삼성), 2위(LG)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전기차 시장의 경쟁력은 당장은 IRA 보조금 혜택을 받는 미국 브랜드가 유리하겠지만,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가 미국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게 되는 몇 년 후에는 얼마나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느냐에 따라 경쟁력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IRA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혁신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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