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얼마 전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얼어붙은 한·중 관계에 대해 “중국의 잘못은 없고 한국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발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싱 대사의 발언 중에는 최근 한국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탈 중국화’ 때문이라는 발언이 포함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그의 말은 일부 타당한 면도 있지만 정확한 판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극히 중국 중심의 사고에 나온 주장에 불과하다.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5일 ‘대중국 수출 부진과 수출 시장 다변화 추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무역수지 악화는 중국으로 수출 감소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 원인에 대해 ‘중국의 중간재 자립도가 향상되면서 우리나라의 대(對) 중국 중간재 수출이 부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중간재를 많이 수입해 온 중국의 산업과 무역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30년간 국제 분업 관계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1990년대 초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간 상호보완적 경제 협력은 ‘동반 성장’의 신화를 이룩했다. 당시 한국은 급격한 임금 인상 등 생산 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반면 중국은 시장경제 초기 단계에서 외국인 투자와 선진 기술이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원부자재를 중국으로 수출하고, 중국은 이를 가공해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는 국제 분업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한때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면서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국이 되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1위의 수입국이자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중간재를 최종 제품화해 세계 최대의 수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양국 간 교역 규모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1992년 수교 당시 64억 달러에 불과했던 대중국 교역량은 30년이 지난 2021년에는 3015억 달러로 47배 이상 늘었다. 최근 들어 중국 의존도가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지난해 기준 여전히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자 수입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양국 간 교역관계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에서 중간재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우리나라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중간재가 줄어들고 있다. 반면, 중국으로부터 우리가 수입하는 중간재 물량은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흑자를 창출하고 중국은 전 세계로부터 흑자를 내던 ‘윈-윈(win-win)’의 경제 협력 내지는 국제 분업 관계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조짐은 지난 2017년 사드 갈등이 불거졌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중간재의 한국 의존도가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사드 갈등은 명분이고 실질적으로는 수입 대체산업을 육성해서 한국과 무역 역조를 개선하고,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 우리 기업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무역수지 흑자 1위 국가였던 중국이 이제는 무역적자 1위 국가로 뒤바뀌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지난해 처음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로 대중국 수출이 감소되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하지만 양국 간 교역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중국으로부터 원부자재를 포함한 중간재 수입이 늘어나면서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과 무역수지 적자 구조를 탈피하게 위해 새로운 전략 수립이 요구되고 있다. 필수 원부자재를 제외한 중국산 중간재 수입을 줄여나가기 위해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산업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과거 중국이 우리나라 제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펼쳤던 정책을 우리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탈중국화 경향을 보이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중국과 새로운 분업관계를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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