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위기의 K-석유화학,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거듭나야
2024-12-02
몇 년 전 수소경제라는 말이 반짝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수소경제를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하나로 선정하면서부터다. 2019년 1월에는 정부 관련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함께 만든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40년 수소차 세계시장 점유율 1위 달성 ▲안정적인 수소 생산 및 공급 시스템 조성 ▲그레이(Grey) 수소에서 그린(Green) 수소 생산으로 패러다임 전환 ▲수소생산-저장·운송-활용 관련 안전관리 기준 확립 등 수소 산업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발표된 로드맵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청사진을 화려하게 제시한 데 비해, 핵심이 되는 수소 연료의 공급 계획과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연료 공급은 수소경제, 나아가 수소사회로 가기 위한 핵심 키워드인데,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높은 목표치만 나열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당시 발표된 로드맵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수소자동차 세계 1위 목표는 전기차가 약진하면서 점차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수소충전소 건립도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그린 수소 생산 및 해외 수소 도입 계획 또한 제자리걸음을 했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가 탈 원전 정책을 폐기하면서 수소경제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는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서 발표한 ‘수소 저장·운송 산업 육성 현황과 정책 과제’라는 보고서는 우리나라 수소경제 혹은 수소산업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향후 수소 공급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저장·운송 기술이 해외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하고 상용화 수준이 낮은 실정이라 밝히고 있다. 특히 한국 수소 저장·운송 특허 비중이 세계 5%에 불과해 유럽연합(EU) 33%, 미국 23%, 일본 22%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수소 산업은 활용 기술 투자에 쏠려 있어 저장·운송 분야 투자 비중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수소 산업에서 저장·운송 분야가 중요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첫째는 향후 시장성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무역협회 보고서는 세계 수소 저장 시장 규모는 2021년 147억 달러에서 연평균 4.4% 성장해 2030년 약 217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운송 시장은 액체·액상 기술이 상용화되면 액화수소 운송 시장 규모가 2050년에는 약 566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수소의 저장·운송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국가가 현재의 산유국과 같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소 생산이 그레이 수소에서 그린 수소로 전환한다면 비용 면에서 유리한 일정한 지역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고, 이것을 전 세계 국가로 공급하는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수소 연료의 저장과 운송 기술을 가진 국가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9월 정부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한 ‘수소경제추진위원회’가 출범하고 이듬해 초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로드맵이 발표되었을 당시만 해도 미국이나 EU, 일본 등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출발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전 정부에서 지지부진한 실행과 더불어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의 변화로 지금은 수소경제 분야에서 선진국과 차이가 많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래의 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사실 수소를 활용하는 기술 개발에 비해 저장·운송 분야는 당장 수익이 보장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민간 기업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정부 수소 예산에서 12%에 불과한 저장·운송의 비중을 늘려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외 수소 공급망 지원 체계를 고도화해 향후 수소 연료의 안정적인 공급과 함께 수송 능력을 제고하는 방안을 수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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