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큰 폭으로 성장하던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37.2%를 기록했는데, 2022년에 성장률이 68%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인 중국의 성장률도 지난 9월까지 32.8%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판매도 주춤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7월과 8월 전기차 신규 등록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0.9%, 35.7% 줄어드는 등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몇 년간 경쟁적으로 투자해 오던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은 향후 생산과 투자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미국의 포드자동차는 전기차 부문의 적자가 누적되자 120억 달러의 관련 투자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GM도 향후 2년간 40만대의 전기차 생산 계획을 폐기하는 한편 혼다와 공동으로 추진해 오던 50억 달러 규모의 보급형 전기차 개발 공동 프로젝트도 전면 취소됐다. 폭스바겐그룹과 테슬라도 미국과 멕시코에 짓기로 한 신규 전기차 공장 건설을 취소 또는 연기하는 등 속도 조절의 의지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기차 시장 둔화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와 함께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로 글로벌 불안정성의 증대를 꼽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소비 진작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기차 시장이 그동안 급성장하는 과정을 지나 이제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캐즘이론(Chasm Theory)’으로 불리는 일종의 성장통이다. 캐즘은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초기에는 일부 소수의 혁신적인 소비자에게만 수용되다가, 주류시장인 일반 대중에게로 확산을 앞두고 수요가 감소하거나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기차 시장도 초기에는 환경에 대한 높은 인식과 정부의 보조금 등을 매개로 일부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했지만, 현재는 초기 동력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의 수요 둔화는 시장이 캐즘에 진입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현재의 전기차 시장의 부진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급성장 산업에서 과도기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캐즘 단계를 무사히 지나면 전기차 시장이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다만 얼리어댑터를 중심으로 하는 초기 소비자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일반 대중으로 수요가 확산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구분되는 시장구조와 이에 따른 새로운 전략이 요구된다.
얼리어댑터의 경우 전기차의 비싼 가격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초기 전기차의 불편함을 상쇄시킬 만큼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하고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기차가 불편하다면 선뜻 갈아타기 쉽지 않다. 따라서 전기차 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전기차 생산업체들과 각국 정부는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생산업체의 가격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이다. 현재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는 원인에 대해 얼리어댑터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가 참여하는 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전기차 가격을 내연기관차 수준 이하로 인하해야 한다. 따라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전기차의 주행 거리, 충전 시간 등의 제약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둘째는 정부의 인프라 확충 노력이다. 지금도 전기차 사용자들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충전 인프라의 부족이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장된 인프라를 통해 전기차 사용에 대한 불안감과 불편함이 해소되어야 전기차 구매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소비자들이 새로운 시장 참여자로 뛰어들 것이다.
올해 들어 전기차 판매량이 둔화하는 것은 기존의 시장에서 더 큰 새로운 시장으로 전환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이 모든 전기차 생산업체에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가격 경쟁력과 함께 혁신 지향 기업만이 시장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에서 캐즘 단계를 넘어서 발 빠르게 대응한 애플과 삼성이 살아남았고, 기존 강자였던 모토롤라와 노키아는 도태되었던 사례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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