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카허 카젬 GM 상하이자동차 부사장은 한국GM 사장으로 5년 동안 근무하고 지난해 중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얼마 전 중국에서 한국무역협회 부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노사문제가 없는 중국에선 경영에 전념할 수 있어 전기차 혁신이 훨씬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한국 근무 당시 국내 노동환경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발언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관리 경제 체제하에 있는 중국의 노동환경을 한국과 비교하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노사문제가 없기 때문에 전기차 혁신이 한국보다 빠르다는 주장도 단편적이며 인과관계가 떨어진다.
하지만 전기차 분야의 혁신이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는 카젬 부사장의 지적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현재 세계 전기차 시장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2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53%를 중국이 차지하며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중국의 올해 자동차 수출은 500만 대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중에서 전기차의 비중이 약 40%대에 달할 정도로 전기차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내연기관차 부문에서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좁히지 못했던 중국의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세계 시장에 우뚝 선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이다. 2010년부터 중국 정부는 내연기관차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정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기술적으로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이 가능한 전기차 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정부 보조금, 세금 감면,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전기차 산업을 지원했는데, 이러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 중국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둘째, 그동안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구축한 풍부한 생산 인프라와 양질의 인적 자원이다. 이를 토대로 전기차 업체들은 관련 기술을 향상시켜 왔는데,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물론이고 모터와 차체 기술도 빠르게 발전시켰다. 최근에는 전기차의 주행 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차체 경량화 부문에서도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전기차 관련 기술력은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 일본, 유럽 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셋째, 자국 업체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는 혁신이다. 현재 중국에는 약 100개의 전기차 제조업체가 있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 BYD, 상하이우링 등 3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샤오펑, 니오, 리샹 등 신흥 전기차 스타트업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대기업에 비해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결국 중국 전기차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도 있었지만, 수많은 업체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한 것이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즉, 중국 전기차 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은 ‘경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사문제가 없기 때문에 전기차 혁신이 빠르다”는 카허 카젬 부사장의 주장은 단편적인 시각일 뿐만 아니라, 중국 전기차의 성장과 혁신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 업체들과 경쟁이 불가피한 우리 기업들이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현대차 그룹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시장이 주목하고 현대차가 경계할 만한 스타트업의 출현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전기차와 같은 미래 산업의 성장에는 스타트업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중국 전기차 산업의 성장과 혁신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관련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지원해 건전한 경쟁 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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