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위기의 K-석유화학,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거듭나야
2024-12-02
홍콩과 싱가포르는 공통점이 많은 국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두 도시국가는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계 무역과 금융업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한때 한국,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며 경제 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이 제조업과 수출시장을 놓고 경쟁했듯이 홍콩과 싱가포르도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 유사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 경쟁 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두 도시국가 간 경쟁에서 무게의 추가 싱가포르로 움직이는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5월 ‘싱가포르와 홍콩의 오랜 경쟁관계 속에서 승자가 나타났다(A winner has emerged in the old rivalry between Singapore and Hong Kong)’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싱가포르가 홍콩을 압도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두 라이벌 사이에서 차이가 발생한 것은 단기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추진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외국인을 내쫓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홍콩을 떠난 사람은 20만명이 넘지만, 싱가포르의 외국인 체류자는 16만명이 늘어났다고 밝힌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큰 문제는 2020년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 이후 홍콩 경제가 활력을 잃어갔다는 것이다.
또한 기사는 2017년 이후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제적 성과를 비교했는데, 싱가포르 경제는 2017년 이후 약 14% 성장한 데 비해 홍콩은 제자리걸음을 걸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해인 1997년 비슷했던 두 도시의 1인당 GDP(싱가포르 2만6376달러, 홍콩 2만7330달러)가 지금은 싱가포르가 홍콩보다 약 1.7배 높다. 그리고 2023년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가 홍콩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World‘s Freest Economy)로 올라선 만큼 두 도시간 1인당 GDP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무너지는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로 지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그동안 홍콩의 성장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배경과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자유로운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의 성장이 부진하고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홍콩의 매력은 감소했다. 더욱이 2014년 우산혁명 이후 중국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자본과 다국적기업들이 홍콩을 탈출하고 있다. 이제 관심은 홍콩을 떠난 자본이 아시아 어느 지역으로 이동하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추세다.
그런데 포스트 홍콩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1997년에 이미 새로운 아시아 금융허브 후보지가 거론되었다. 당시에도 싱가포르가 가장 유력한 가운데 일본의 도쿄, 대만의 타이페이 등이 떠올랐다. 국내에서는 제주도를 자유무역지대로 만들어 홍콩의 유산을 이어가자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중국 경제의 급격한 부상으로 홍콩의 역할이 계속되면서 대체지 경쟁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홍콩 국가보안법 이후 홍콩이 중국의 일개 도시 수준으로 위상이 격하되면서 아시아 금융허브의 대체지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도쿄와 싱가포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한때 국제 금융허브 6위에 올랐던 서울을 후보지로 언급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만큼 다양한 금융 인프라를 조성해 포스트 홍콩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국가 경쟁력 제고와 경제 자유화 노력을 통해 합리적인 글로벌 제도 기준을 충족해 나가야 할 것이다. 홍콩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경제 자유화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을 때이고, 홍콩의 몰락이 중국 정부의 간섭으로 경제 자율성이 훼손되기 시작한 점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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