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엔화 가치가 바닥을 모를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지난 3일 엔/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달러당 162엔을 찍으며 3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엔화는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160엔대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경제의 기초 체력이 취약한데다 통화 당국도 마땅한 방어 수단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추가 하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역사적 저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 한다.
엔/달러 환율의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악화된 것을 알 수 있다. 2021년 10월 달러당 114엔 수준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2022년 3월과 6월에 각각 120엔, 130엔 수준으로 급격하게 상승한다. 그리고 약 1년 후인 지난해 7월 140엔을 돌파하면서 엔화 가치 하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올해 초 140엔 초반 대에 형성됐던 엔/달러 환율은 3월 150엔을 돌파하고 6월말 160엔을 돌파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엔화 가치의 하락 원인은 다음과 설명된다.
첫째, 미·일 금리 격차이다. 미국의 기준 금리는 5.5%이지만 일본은 초저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일본 중앙은행이 지난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탈피해 금리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0%~0.1%에 불과하다. 금리 인상 효과를 이야기하기에는 미국의 금리 수준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미·일 금리 격차는 투자자들이 달러를 매수하고 엔화를 매도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둘째, 미국과 일본이 경제 성장률 격차이다. 지난 10년간(2014~2023년) 미국의 평균 GDP 성장률은 2.3%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의 성장률은 0.7%로 미국 경제 성장률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이는 미국 경제가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본 경제는 지난 10년간 성장이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장률의 차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달러에 몰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일본 정부의 개입 한계이다. 일본 정부는 엔화 약세를 완화하기 위해 2022년 10월 이후 외환 시장에 개입하고 있으나 제한적인 효과에 그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가 계속 하락한다면, 개입 능력에 대한 의심을 키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시장 전문가들도 일본 당국이 외환시장에 직·간접적인 개입을 단행해도 효과는 한정적일 것으로 예상이 지배적이다.
엔/달러 환율의 상승(엔화 가치의 하락)의 핵심은 미·일 금리 격차와 경제 체질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경제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다는데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1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0.7%, 연율 기준 2.9% 감소했다. 올해 일본의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0.8%에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경우 7월 금리 인상이 어려워지면서 엔화의 가치 하락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슈퍼 엔저가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수출 부문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2일 ‘추락하는 엔화, 전망과 대응’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전문위원은 한·중·일 삼국은 유사한 산업과 수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상관관계가 높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국내 산업과 기업이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슈퍼 엔저 장기화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엔화가 달러당 170엔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처럼 엔화 가치가 계속해서 하락한다면 우리 수출 기업이 입을 타격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철강, 기계, 석유화학 제품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수출 경합도가 높은 이들 품목을 중심으로 연구·개발과 수출 지원을 강화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슈퍼 엔저에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한 맞춤형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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