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그동안 굳건하게 유지되어 온 미국의 고금리 체계가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연준(Fed)은 7월 30~31일 양일간 열린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5.25~5.50% 수준을 유지하는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하지만 연준은 기준금리 발표와 함께 내놓은 성명서에서는 차기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췄다. 시장이 예상한대로 ‘(7월 동결-9월 인하’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연준이 발표한 성명서는 경제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9월 금리 인하에 무게를 싣고 있다. 상황 변화와 관련해 연준은 먼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 증가세가 강하다’는 표현 대신 ‘완화됐다’로 고쳐 썼다. 또한 실업률은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에서 ’실업률이 다소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상태다‘로 대체했다. 물가와 관련해서는 인플레이션이 ’상승했다(elevated)‘에서 ’다소 상승했다(somewhat elevated)’로 수정했다.
연준의 성명서에서 9월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암시한 부분은 기존의 ‘인플레이션 위험(inflation risk)’을 삭제하고 ‘두 가지 임무(고용과 물가)에 대한 위험(risk to the both sides)’을 추가한 것이다. 기존의 ‘물가 안정’에서 벗어나 ‘물가와 고용’ 모두에 충실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이는 물가 안정을 위해 고금리를 유지하다가 실업률 급증과 경기 침체를 유발하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다가오는 FOMC에서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까지는 시장에서 이미 예상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연준이 7월 금리를 동결하고, 9월 금리 인하를 암시하자 3대 지수가 급등하는 등 시장은 환호했다. 하지만 이틀 후 미국의 고용 지표가 악화되고, 제조업 업황이 예상보다 더 나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황은 돌변했다. 특히 미국의 7월 실업률이 4.3%로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르자 경기 침체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업률이 4.3%로 치솟자 경기 침제를 예고하는 ‘삼의 법칙(Sahm’s rule)’이 발동되었다. 삼의 법칙은 최근 실업률의 3개월 이동평균치가 앞선 12개월의 최저치보다 0.5%p 이상 상승하면 경기 침체가 발생한다는 것으로, 7월 실업률이 4.3%가 되면서 이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물론 삼의 법칙이 발동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경기 침체가 온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통계적 사례를 감안할 때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를 지울 수는 없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파월 의장은 FOMC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삼의 법칙은 통계적 규칙성에 불과하다”면서 현실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는 경제 지표가 나빠졌지만 미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 참가자들은 파월의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연준이 7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을 두고 파월이 또 다시 실수한 것이라 꼬집고 있다.
사실 파월 의장은 과거 시장의 신뢰를 잃은 적이 있다. 지난 2021년 3월 소비자물가가 2018년 8월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인 2.6% 오르는 등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파월 의장은 “이번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것이며 자체 해결이 예상되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변화를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자 뒤늦게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해 ‘뒷북 논란’을 자초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시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에 빗대, 이번에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금리인하 시기를 놓치는 실수를 했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9월까지 기다리지 말고 긴급회의를 통해 조기에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9월 금리 인하 폭도 한 번에 0.5%p 인하하는 빅컷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의 전망도 달라지고 있다. 씨티그룹은 보고서를 통해 연준이 9월과 11월 각각 0.5%p 인하하고, 12월에 다시 0.25%p 인하하는 등 올해 총 1.25%p 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NG도 미국의 실업률이 연말에 4.5%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연준이 예상보다 더 많은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미국에서 금리 인하가 거의 확실해 지면서 한국은행도 바빠지고 있다. 그동안 경기 진작을 위한 금리 인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으로서는 미국과 금리 격차가 부담됐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이 9월에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 한국은행도 10월부터 단계적으로 인하해 시장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부동산 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금리 인하와 함께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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