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최근 전기차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배터리의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8월 1일 인천에서 벤츠 EQE 승용차 화재 당시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밝혀져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기피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며칠 뒤 발생한 금산의 전기차 화재는 기아 EV6로 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브랜드와 배터리 제조사는 달랐지만 모두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장착한 공통점이 있다.
인천 화재 직후 ‘싸구려 중국산 배터리’라는 프레임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가의 분석과 추가적인 정보 공개를 통해 화재 원인이 배터리의 생산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산 배터리가 모두 국내산보다 위험하다고는 볼 수 없으며, 배터리의 종류(NCM, LFP)에 따라 안전성이 다르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를 계기로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 다툼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크게 NCM과 LFP(리튬인산철)가 양분하고 있는데, 두 배터리는 장점과 단점이 교차한다. 즉, NCM의 장점이 LFP의 단점이고, 반대로 LFP의 장점이 NCM의 단점이 되고 있다. 먼저 NCM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로 인한 긴 주행 거리, 빠른 충전 속도, 우수한 성능 등이 장점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낮은 열적 안정성, 환경 및 공급망 이슈(코발트 사용) 등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LFP 배터리는 우수한 열적 안정성으로 인한 낮은 화재 위험, 긴 수명, 코발트 미사용으로 인한 친환경성, 비교적 저렴한 비용 등이 장점이다. 하지만 낮은 에너지 밀도로 인한 짧은 주행 거리, 무거운 무게로 인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LFP 배터리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주행 거리가 크게 개선되면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배터리의 생산과 사용하는 업체도 뚜렷하게 구분된다. NCM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요구하는 고성능 전기차 모델에 주로 사용되며, 한국(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과 일본(파나소닉) 기업이 주로 생산한다. LFP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중저가 모델과 상용 차량에 널리 사용되며, CATL, BYD, Gotion High-Tech 등 중국 기업들이 주로 생산하고 있다. BYD와 같은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와 중국산 테슬라가 채택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우수한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채택이 증가하면서 성장세가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LFP 배터리의 점유율은 2019년 8.8%에서 2023년 42.3%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NCM 배터리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유안타증권 이안나 애널리스트도 지난 2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20년 17%였던 LFP 배터리의 시장 점유율이 2023년 37%로 상승했다고 밝힌다. 특히 2023년 4분기에는 40%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증가 속도다. LFP 배터리의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일각에서는 시장의 주도권이 LFP 배터리로 이미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특히 단점인 주행 거리 문제가 해결되면서 LFP 배터리의 시장 우위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LFP 배터리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생산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업체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분야의 후발 주자인 국내 업체들은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단기적으로는 LFP 배터리 생산 확대와 고성능화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장점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해 시장을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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