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경제톡> 새로운 무역 전쟁 대비 시급
2024-12-09
1970~1980년대를 거치며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Four Asian Dragons)’이라 불렀다. 이들 4개국은 이 시기에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라는 특수성으로 금융과 중계 무역에 특화된 반면, 한국과 대만은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특히 대만이 중소기업과 경공업 중심의 성장을 추구했다면, 한국은 대기업과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성장 전략을 펼쳐 규모와 잠재력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대만 경제가 한국을 추월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위기설로 미래 산업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와중에 정치적 리스크까지 겹치며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대만은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붐에 편승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어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증시를 포함한 대만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한국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최근 한국과 대만 경제를 비교하며, “대만 증시는 AI 산업 성장의 영향으로 올해 약 30% 상승하며 한국 증시와의 격차가 약 1조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대만은 AI 붐을 기반으로 TSMC 등 주요 기업들이 엔비디아(NVIDIA), 마이크로소트트(Microsoft), 오픈에이아이(OpenAI) 등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대만 달러의 강세 역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 한국 코스피는 올해 8% 이상 하락해 세계 주요 지수 중 최악의 성과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전자 주가는 기술 혁신 지연과 경영난으로 인해 올해 31% 급락했다. AI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심화된 상황이다. 또한 대만은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에도 글로벌 기술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한국에 비해 비교적 덜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AI 붐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입지 차이로 인해 대만은 한국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이러한 격차는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 다른 외신들도 한국과 대만의 주식시장과 경제적 차이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시아 시장의 성장 동력 차이이다. 대만의 주식시장은 반도체와 하드웨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AI 관련 수요 증가에 따른 강력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대만 증시에서 반도체 관련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58.3%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9.8%로 상대적으로 낮다. 한국 증시는 소비자용 전자제품과 소프트웨어 등 비반도체 업종 비중이 높아 글로벌 경기 변동에 더 민감하다.
둘째, AI 관련 투자 기회의 차이이다. 한국과 대만 모두 AI 붐으로 투자 기회를 얻고 있지만, 대만은 AI 하드웨어와 반도체 산업에 집중되어 있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빅테크 주식도 AI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로 회복 가능성이 있지만, TSMC 등 대만 기업에 비하면 성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셋째, 증시 구조의 차이이다. 대만 증시는 반도체 등 성장 산업의 비중이 높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반면 한국 증시는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전통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며,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 시장 회복 불확실성 등의 외부 요인에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로 대만의 AI 관련 테마 주식과 TSMC 같은 반도체 기업은 글로벌 경제와 시장 흐름을 선도하는 ‘벨웨더(Bellwether)’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는 AI 경쟁에서 뒤처지며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소외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대만과의 격차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규제 완화와 기업 혁신 환경 조성을 통해 제도적 개선을 추진해야 하며, 민간 부문에서는 AI,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 기술과 미래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증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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