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끝이 보이면서 한 시름 놓는가 싶더니 이번엔 환율이 우리 경제의 목을 죄고 있습니다. 고삐풀린 환율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금요일 원?달러 환율은 1326원대까지 치솟으면서 또다시 연고점을 갱신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100원 이하로 떨어졌던 환율은 지난해 1월부터 방향을 돌려 1년만에 1200원을, 다시 6개월만에 1300원을 돌파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이 고속질주의 연료가 됐습니다. 지난 1년반 동안 상승분, 즉 사라진 원화 가치만 20%에 달합니다. 기업이나 가계에서 보유중인 원화자산 가치도 그만큼 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과거 달러당 1300원이 뚫리면서 우리나라에 가공할 경제위기가 왔다는 점에서 산업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시 환율은 900원대에서 1300원대를 거쳐 1852.5까지 100% 수직상승했으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때는 77% 급등했습니다. 최근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것도 공포감을 키우는 요인입니다.
로그 차트를 보면 현재 환율은 달러당 1300원을 돌파하면서 지난 1996년 이후 그려온 수렴구간의 상단인 1340~1350원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외부요인 고려 없이 순수하게 차트만 본다면 향후 환율이 이 구간을 강하게 돌파할 경우 2008년 금융위기때의 고점에 도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그 정도 큰 악재가 발생해야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현재 환율이 상당히 견조한 우상향을 그리는 상황에서 조만간 위든 아래든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차트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인버스차트입니다. 차트를 보면 2014년 이후 등락 고점이 지속 낮아지면서 이번 하락이 나왔으며, 현재 앞선 박스권 등락시 저점을 모두 깨면서 지난 2008년 이후 그려온 지지라인에 3번째 다가서는 모습입니다. 이번에도 지지라인이 지켜질 지 여부가 주목됩니다.
원화의 힘을 뺀 주범은 ‘강달러’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미국의 금리인상 근거를 제공하고 금리인상은 다시 달러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트레이드’ 청산 압력을 높이면서 달러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국내 역시 외국인의 ‘셀 코리아’가 본격화되면서 강달러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때 풀린 달러가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채 코로나로 헬리콥터 머니가 뿌려지면서 금리가 어디까지 오를지 모르는 판에 외국인의 선택지는 상당히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외국인들이 증시에 이어 채권에서까지 발을 빼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개미들의 우량주 투자 열풍이 외국인의 탈출에 도움이 됐다는 것입니다. 동학개미들의 러브콜이 집중됐던 삼성전자의 경우 주가가 10만원을 넘봤던 지난해 1월 외국인 지분율은 55.52%였지만 현재 49%대로 떨어졌습니다. 매물을 쏟아낼 때 마다 동학개미들이 이를 받아가면서 외국인의 차익실현은 손쉽게 이뤄졌습니다. 덕분에 삼성전자에 '국민주'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동학개미가 지난 1년반 동안 주가하락을 고스란히 떠않았다는 것은 상당히 속이 쓰린 대목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존 리 등 우량주 장기투자를 외치는 전문가들에 동조하면서 이른바 '정석 투자'에 나섰던 동학개미들이라면 상당기간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환율 상승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달러로 결제를 받는 수출기업은 환율이 오른 만큼 가만히 앉아서 돈을 더 벌 수 있습니다. 수출경쟁력도 높아집니다. MB시절 강만수 전 장관이 대기업 살찌우기라는 비판에도 ‘고환율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원자재값 고공비행으로 이 같은 '환율 특수'가 상쇄된 지 오래입니다. 더욱이 원자재값 급등과 고환율 이중고에 시달리는 수입기업은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
많은 전문가는 강달러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미국발 세계 경기침체, 이른 바 ‘R의 공포(Recession) 공포’가 번지면서 안전자산 달러의 몸 값이 더욱 치솟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경제 기초체력이 취약한 일부 국가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달러가 왕'이 되면서 인플레이션 헤지의 수단으로 각광받았던 금마저도 외면당하는 실정입니다.
한미간 금리역전도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 입니다. 미국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대비 9.1% 상승하면서 이달 말 연준이 금리를 한번에 1%를 올리는 울트라 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금리역전이 현실화되면 '셀 코리아'가 더욱 거세질 수 있습니다. 시장에선 달러당 1400원 이상이 될 가능성도 열어둬야한다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강달러 시대가 장기화될 경우 외환보유고 관리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습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6월에만 94억3000만 달러가 사라졌습니다. 이는 금융위기때인 2008년 11월 이후 13년 7개월만에 최대치라고 합니다. 현재 위기가 국내 경제의 펀더멘탈이 문제가 아니라는점에서 조만간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에도 만일을 대비해 한미 통화스와프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경제위기는 예상치 못한 악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오일결제 다변화에 따른 미국의 기축통화 위상변화나 경제의 몰락, 중국의 대만 침공, 미중 전쟁 등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더라도 이같은 뜻밖의 악재가 나타날 경우 달러 스와프로만 해결하기 힘든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에서 '절대'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대비책으로는 금을 들 수 있습니다. 비록 현재 달러에 밀려 약세를 면치못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칠때 달러를 대신해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은 것이 금입니다. 러시아가 서방국가의 경제재재에 버티는 데는 탄탄한 금 보유량도 무관치 않다는 풀이가 나옵니다. 러시아의 금 보유량은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3배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금 매입을 중단해온 한국의 금보유량은 104톤으로 전체 36위에 그치고 있습니다. 정부가 금을 추가적으로 매입할지, 아니면 다른 대책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에 나설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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