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나라 때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史記)에는 군주의 통치 행태, 즉 정치의 등급을 26자로 간략하게 나누어 기술한 부분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개의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故善者因之(고선자인지·가장 좋은 것은 순리를 따르는 자연스러운 것을 따르는 순리의 정치이고), 其次利道之(기차리도지·그 다음은 백성을 이익으로 이끄는 것이며), 其次敎誨之(기차교회지·그 다음은 백성을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其次整齊之(기차정제지·그 다음은 백성들을 일률적으로 바로 잡는 것이고), 最下者與之?(최하자여지쟁·가장 못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사기가 나온 지 이천년이 넘었기 때문에 당시 사마천이 열거한 정치의 등급이 현재 시점에서 보면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특히 정치 등급의 첫 번째로 언급된 故善者因之는 자연(순리)에 따르는 정치로 이상향에 가깝다. 사마천도 사기의 첫 권인 오제본기(五帝本紀)의 전설적인 다섯 임금이 다스린 시대를 순리의 정치라 말하고 있어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다. 이는 사마천의 시대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개념이므로 논외로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네 개 등급은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요즘의 정치 상황에도 나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등급인 백성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는 ‘경제를 살린 대통령’ 정도로 해석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가지 일을 잘해도 경제에서 실패하면 정권을 내놓은 사례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등급인 교화하고 엄격한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는 현대에서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 정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사마천이 최악으로 꼽은 백성과 다투는 정치는 정권 유지 혹은 연장을 위해 국민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정치 행태로 아직도 전 세계 어디선가에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사마천의 제시한 정치의 등급이 현대 정치에 적용이 가능하다보니 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이를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2월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은 한 칼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1년9개월을 돌이켜 볼 때 초기 잠깐을 제외하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정치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정의를 설교하고 형벌로 제압하다 국민과 싸우는 신세, 즉 사마천식 ‘최악의 정치’에 빠져 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한 비판을 찾아 볼 수 있다. 2014년 9월 경향신문에 실린 박래용 칼럼은 한 술 더 떠 세월호 사태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외면하는 박근혜 정부를 두고 ”(다섯 번째 등급인) 백성과 다투는 정치 아래에 백성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짜증을 내는 6등급 정치“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몇 등급 정치에 해당할까. 일단 경제를 살린다는 의미의 ‘其次利道之’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고 속에 금융시장을 마비시키는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터무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지만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거나 늑장 대응으로 뒷북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협치가 실종되고 검찰공화국을 지향하는 있어 법으로 백성을 일률적으로 다스린다는 ‘其次整齊之’에 가깝다. 또한 국민 대다수의 귀에는 ‘바이든’ 혹은 ‘ㅂ’으로 시작하는 단어로 들리는데 ‘날리면’이라고 우기거나, 비속어를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백성과 다투는 정치’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던 이태원 참사를 방치하고 책임 회피에 급급하는 모습은 사마천이 최악의 정치라 말하는 ‘最下者與之?(가장 못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백성과 다툰다는 것은 최소한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는 것이지만, 현 정부에서는 ‘무능’과 ‘책임 회피’, ‘외면’, ‘우기기(혹은 속이기)’ 밖에 보이지 않아 국민을 업신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마천이 살아 돌아와 현재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궁금해진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