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회장의 사임 발표 이후 차기 회장 후보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결국 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한숨 돌리는 방안을 선택했다. 지난 17일 한 언론은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전경련 회장 권한 대행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경련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김 회장이 다수의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제안을 받고 수락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동안 차기 전경련 회장 자리를 두고 적임자를 찾지 못한다는 소식은 여기저기에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경제 부문의 경력이 일천한 정치인 출신의 김병준 회장이 지명되었다는 사실에 재계와 경제계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전경련에서 비경제인이 회장 혹은 직무대행을 맡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1961년 설립 이후 전경련은 재계 오너가 회장을 맡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 오너 회장이 아닌 유창순 회장(19~20대)과 손길승 회장(28대)도 경제 관료와 기업인으로 오래 활동해 재계와 인연이 깊은 편에 속한다.
사실 차기 전경련 회장 물색은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7위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개인 사정과 기업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고사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김윤 삼양그룹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비롯해 손경식 경총 회장,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의 이름도 오르내렸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더욱이 차기 회장의 임무가 4대 그룹 등의 재가입을 유도해야 하고, 정부의 전경련 ‘패싱’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점은 누군가 선 듯 나서기 어렵게 만들어 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외부에서 회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이른바 구원투수를 영입해 무너진 조직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원투수가 경제와 무관하고 현 여권 실세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더욱이 ‘회장후보추천위원장과 미래발전위원장’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단 이웅렬 회장이 전경련 혁신을 주도하고 적합한 회장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공언한 것 치고는 용두사미에 가까운 결과를 내놓았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물론 김병준 회장을 추천한 배경이 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다. 여권 실세 중 한명으로 정부와 소통을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고, 비경제인 출신이기 때문에 4대 그룹의 재가입과 관련해 사심 없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고려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국민의 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당(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경력도 현재의 전경련 상황에 비춰볼 때 적합한 인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정치인 출신에게 조직 재건과 차기회장 후보를 물색하는 권한대행을 맡기겠다고 한 결정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재계 총리’ 역할을 자임했던 전경련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깊숙이 개입한 정황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김병준 회장을 영입한 것은 정경유착으로 무너진 조직을 또 다른 정경유착으로 탈피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또한 김병준 회장을 둘러싼 주변 상황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채 한 달도 되지 않는다. 그쪽의 업무를 파악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는 뜻이다. 이런 마당에 풀기 어렵다는 전경련 문제의 해결사로까지 등판해 동시에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두 단체 모두에게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슈퍼맨의 능력을 지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전경련이 신뢰를 잃은 대상은 국민과 국민경제이지 정부나 정치권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전경련은 정치권을 바라보며 현안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인을 잘못 파악하고 처방하려다보니 모두가 의아해 하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굳이 전경련이 정부와 소통을 중시했다면 최소한 경제 관료 출신 전문가 내지는 명망이 있는 경제인을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나마 조직을 살리겠다는 진정성은 인정받았을 것이다. 지금 전경련의 선택은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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