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31일 전기차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부지침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내놓았던 IRA 전기차 세액공제 백서를 구체화한 것이다. 발표 후 우리 정부와 관련 기업들은 요구한 사항이 상당 부문 반영되었다면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발표에 따르면 배터리 부품의 북미 제조·조립 비율과 핵심 광물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의 추출·가공 비율을 산정할 때 개별 부품·광물이 아닌 전체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특히 핵심 광물은 추출이나 가공 중 한 과정에서만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미국과 FTA 체결국에서 창출해도 세액공제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산 소재를 활용해 한국에서 가공해도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세부지침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부품과 핵심 광물 중 어느 쪽으로 분류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번 규정에서 음극판, 양극판, 분리막, 전해질, 배터리셀, 모듈 등은 부품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음극판이나 양극판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양극 활물질 등 구성 재료(물질)는 배터리 부품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구성 재료에 해당하는 양극 활물질은 부품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해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양극판, 음극판은 부품으로 간주된 만큼 앞으로 북미 제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업체들이 구성 재료는 국내에서 생산하고 양극판·음극판 과정부터 미국에서 제조하는 공정을 추진하고 있어 이번 조치로 인해 전략적으로 변화하는 부분은 크게 없어 보인다.
사실 배터리의 경우 원재료의 글로벌 수급의 단기 개선이 어렵고 이 분야에서 경쟁하는 미국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미 정부가 한 발 물러설 것이라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로 배터리 부품과 관련해서는 전체 부품의 부가가치 중 50%를 북미에서 생산할 경우 세액 공제를 명시하면서 2029년에 100%를 목표로 연도별 단계적 상승을 요구하고 있다. 시간을 두고 미국의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차츰 중국을 배제시켜 나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관심이 집중되었던 전기차의 보조금 지급 문제에서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미국이 지난해 8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종 생산(또는 조립)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보조금을 최대 7500달러를 지급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전기차 생산과 미국 수출이 많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과 일본 등이 이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다만 리스 등 상업용 전기차에 대해서는 예외로 두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평가다.
완성 전기차의 경우 경쟁력이 있는 미국 업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산업이 전후방 산업과 관련한 연계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양보에 인색한 것이다. 미국 혹은 북미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지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입장에서는 당장 보조금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겠지만, 2025년 미국 내 생산 기지가 완성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 매김할 것이 분명한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이 점차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겨 간다면 우리 산업의 일부 공동화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IRA 세부지침 발표에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우리나라 전체 산업과 고용의 차원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주도로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에 대응하는 우리 산업의 생존 전략을 서둘러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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