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미프진 40만원에 판매, 실시간으로 상담 받습니다". "아이디 OOO, 카톡 주세요"
미프진은 임신중절에 사용되는 유산유도제로 온라인에서 발견되는 제품은 대부분 미국산임을 내걸고 있다. 판매업체는 이렇게 온라인 상담으로 약을 판매하는데, 대개 해외 '직구'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ㆍ약제사 등의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에 따라 약국에서 대놓고 판매할 수는 없다. 똑같이 불법이지만 산부인과에서 행해졌던 낙태 수술처럼 보호자가 필요하지도 않고 신분 노출 염려도 없다. 그러니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임부 입장에서는 한결 '편리'하다.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한 부녀와 그것을 도운 의사 등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를 예정한 11일을 이틀 앞둔 날. 소셜 메트릭스로 최근 3개월간 ‘낙태’ 관련 버즈(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의미있는 언급)를 살펴본 결과, 연관 키워드 4위는 '수술'이었고, 부정감성어 1위는 '부작용'이었다. 모두 트위터와 블로그 등에서 낙태약 미프진을 홍보하는 게시물에 등장한 단어다.
연관어 '수술'을 추적해 봤더니 "수술 고통 없이 안전하고 조용하게 낙태할 수 있다"는 게시물이 나왔다. '부작용'이 등장한 것은 왜일까. 미프진 홍보 게시물에서 "부작용 낮아요" 등과 같은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프진'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키워드는 '정품'이었다. 이것도 "정품 맞습니다"라는 홍보 문구에 기인한다. 유산유도제 판매가 불법임을 아는 소비자들은 해당 약품의 출처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품 여부를 가장 먼저 의심하기 마련이다. 또 낙태는 친구끼리도 쉽게 의논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를 입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기 전에 부작용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판매업체에서는 정품이 맞고 부작용이 적다는 점을 적극 광고한다.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는 낙태 시술 의사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산부인과 의사단체가 "낙태수술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후 복지부는 헌법재판소의 선고 후까지 관련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했으나 의사와 산부인과를 찾는 임부의 마음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미프진'의 단위기간별 버즈량이 지난해 10월 이후 급증했는데, 복지부의 이 같은 조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불법 판매된 의약품 중 가장 증가율이 높았던 것은 미프진 같은 임신중절유도제다. 2016년에는 193건으로 전체 0.8%에 불과했던 것이 2017년 1144건으로 여섯 배가량 증가했고 지난해는 9월까지 1984건이 적발돼 2016년에 비해 열 배가 늘었다. 거듭 말하지만 미프진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제공되는 약이 아니다.
버즈와 통계에서 보듯 지금 우리나라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몇몇 약품 판매업체 '상담원'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자신의 신체를 온라인 채팅으로 진찰한 '상담원'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고 낙태를 '감행'하고 있다. 한 업체 광고에는 "충분한 상담과 사전테스트를 거쳐 복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낙태를 원하는 임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다. 한 포털에는 미프진을 복용한 후 나타나는 신체 변화에 대해 불안해하며 문의하는 글이 많이 발견된다.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낙태 허용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행복추구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어느 쪽도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권리다. 그러나 11일 헌법재판소가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낙태를 도왔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처벌하는 것만은 그만둬야 한다. 적진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 한, 전투에서 부상당한 적군을 치료하는 의사를 이적죄로 처벌하겠는가. 의사는 자신에게 구조를 요청한 사람을 구조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낙태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것이 법적ㆍ윤리적으로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상담원'이 낙태를 감행하는 부조리 만큼은 끊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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