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대한민국 경제의 압축성장은 공장에서 묵묵히 일한, 흔히 말하는 ‘공돌이’들의 희생없이는 불가능했다. 시퍼런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보상은커녕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또 다시 절단기 앞에 서야 했던 그들. 그러나 국가와 우리사회는 그들을 천대하고 멸시만 할 뿐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았다. 대한민국 산업의 대들보임에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천시한다. 대한민국의 뿌리산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소공인진흥협회 곽의택 회장을 만나 애환과 소망을 들어 보았다.
▲한국소공인진흥협회는 언제 결성됐나
-제조업 사각지대에 있는 소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2012년 1월 창립했다. 문래동 머시닝밸리 등 소공인들의 집적지 조사를 하다 보니 소공인들간 경쟁 심화와 사회적 멸시 등으로 뿌리산업이 사양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소공인들의 의식변화를 일구고 집적지에 모여 있는 장인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10여년간 전국의 소공인 집적지를 다니며 소공인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소공인들에게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머신밸리’를 만들 수 있다는 미래의 비젼을 심어줬다. 온라인 마케팅과 인문학 강좌 등 소공인들에게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진행했다. 출범 6년만에 전국 58곳의 지역에 지회를 구축했다. 경제 생태계의 정책을 현장의 목소리로 전달하고 정부 부처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소공인들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인가
-사실 꽤 오래전부터 국내 제조업의 어려움이 있어 왔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더해졌으니 현재 그 처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수준이다. 방역조치에 따라 소상인들도 매우 힘든 실정이지만, 제조업 소공인들 또한 대기업의 해외 현지생산과 해외 저가제품 수입, 대량 양산 규모 감소 등의 산업 환경 변화에 따라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사업 정상화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지금도 공단 지역은 물론 소공인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집적지에 빈 공장들이 늘어만 가고 있으며,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공인기업 대표자의 1/3 정도가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고 하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소공인들이 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국내 제조 중소기업 43만여개 중 약 83%(36만여개) 가량이 10인 미만 소공인 제조기업이다. 금속가공과 기계제작부터 의류·봉제, 가구, 인쇄, 식품류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업종에 걸쳐 뿌리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소공인들이 없다면 기초 소재부품 단계부터 문제가 발생해 산업계 전반에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지난 2018년 일본과의 마찰로 인해 국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산업이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업구조상 가장 하위에 위치하고 있는 소공인들은 그간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오기 일쑤였다. 대·중소기업들과 소상인에 가려져 충분한 지원정책의 수혜를 받지 못했으며, 납품단가와 납기 등에 있어 늘 불리한 위치에서 고된 역할만을 수행해 왔다.
▲소공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한데
-농경사회에서는 농부가 천하의 근본이라고 했다. 요즘같은 산업사회에서는 뿌리산업을 이끌고 있는 소공인들이 천하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손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기능올림픽의 금메달은 모두 대한민국이 독차지해왔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젓가락문화에서 기인한다. 대한민국의 최대 장점인데 지금 그 장점이 죽어가고 있다. 국가와 사회의 멸시와 조롱 때문이다. ‘공돌이’, ‘기름밥’으로 멸시받는 직업인데 누가 그 길을 가려 하겠는가?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은 불가능했다. 현장에 가 보면 가장 나이 어린 소공인들이 50대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들이 현장을 채우고 있다. 대한민국 뿌리산업의 장래가 밝지 못하면 이 나라의 산업전체가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공인들의 나아갈 방향은
-대한민국 산업이 급성장하던 1970~90년대는 제조업의 부흥기였고, 소품종 대규모 양산 체제로 인해 중소기업은 물론 소공인들에게도 일감이 풍족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3D프린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대변되는 생산공정 스마트화와 다품종 소량생산의 수요자 중심 시장 체제 등으로 인해 소공인들이 도맡아 왔던 일감(임가공)들은 이미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소공인들이 기존의 생산제품과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향후 사업지속을 담보할 수 없다. 가보지 않은 영역에도 과감히 뛰어 들 수 있는 도전정신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경영·기술 지식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거래처 다변화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추구하고, 단순 임가공에서 벗어나 완제품 기획·설계·제작에도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교육과 자기계발로 거래처와 원활히 소통·협상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익혀야 한다. 나아가 온라인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자신의 제품을 세상에 알리고, 고유 제품과 기술을 유통시킬 수 있어야 한다.
▲우수 소공인들을 육성하기 위한 그간의 정부의 노력은
-정부가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 덧 반세기에 이른다. 많은 중소기업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등장했으며, 상점가·전통시장은 인프라 현대화와 문화컨텐츠 사업을 통해 새롭게 변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공인들의 변화는 딱히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달리 말하면, 소공인들은 그간 정부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2015년경부터 도시형소공인법이 시행되면서,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주도하에 다양한 소공인 전용 지원사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소공인집적지구 지정, 소공인지원센터 운영, 공동인프라 조성, 소공인 연구개발·판로개척, 소공인 정책금융 등 다방면에 걸쳐 체계적으로 지원정책을 수립·시행해 오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소공인특화지원센터 등 현장지원기관이 설치되지 않은 이른바 비(非)집적지 소재 소공인들은 지원사업 정보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백년소공인들에게 성장사다리를 제공해 중소벤처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은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다. 어느덧 우리 일상으로 자리잡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소공인 분야의 구조조정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은 듯싶다. 이에, 정부에 건의하고 싶다. 소공인들의 지속과 성장을 위해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에 보다 더 귀 기울여주기 바라며, 이를 신속히 지원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소공인 지원기능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산업·경제정책의 대들보인 강(强)소공인 육성을 통해 대한민국의 기초를 든든히 해주길 부탁한다.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우대해 주면 우리 사회의 천대와 멸시도 바뀌게 된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