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사고파는 시대다. AI(인공지능)도 데이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세돌 9단을 이기며 바둑의 신(神)이 된 알파고도 바둑 기사들이 쌓아놓은 3000만 건의 기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우리나라도 데이터 거래소가 생겨 활발히 운영 중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빅데이터 산업 속에서 소상공인들의 역할과 시사점을 짚어보기 위해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마케팅) 솔루션 회사인 ㈜샵온에어(ShopOnAir)의 고용철 대표를 만났다.
-샵온에어는 어떤 회사인가
“2016년 신한은행에서 써니뱅크라는 모바일은행을 운영하며 경기도주식회사와 '착한 결제' 사업을 추진했다. 제로페이처럼 소비자 계좌에서 가맹점 계좌로 결제 대금을 직접 입금하여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이 사업을 진행하며 매장들이 생산하는 영수증이 빅데이터 산업의 보물임을 깨닫게 되었고, 영수증을 활용하는 비즈니스에 투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수증이 정말로 돈이 되는가
“데이터 거래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소비'와 관련된 데이터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에게는 구매자의 소비 패턴과 성향에 대한 정보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소비 관련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카드회사다. 그런데 카드회사는 누가 어디에서 얼마를 썼는지는 알지만 '무엇'을 구매했는지는 모른다. 마트에서 10만원을 결제했다는 정보만 있을 뿐,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모르니 마케팅에 활용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구매 목록 데이터가 바로 영수증에 포함되어 있다. 구매 목록 데이터는 그 가치가 매우 높아 딥데이터(Deep Data)로 불린다.”
-빅데이터와 딥데이터의 차이점은
“카페를 예로 들어보자. 일반적인 빅데이터는 어떤 카페의 '아침 9시 매상이 높다' 정도의 얕고 두루뭉술한 정보만 제공한다. 하지만 딥데이터는 '홍길동이 바닐라라떼를 월요일 아침 8시~9시 사이에 자주 마신다' 수준의 깊고 세분화된 정보를 만들어낸다. 카페 사장은 홍길동에게 월요일 아침 7시 50분에 할인쿠폰을 휴대폰으로 발송하거나, 단 것을 좋아하는 홍길동을 위해 초콜릿을 권유하면 좋을 것이다. 다른 손님의 정보와 결합하여 바닐라라떼가 포함된 세트메뉴를 개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딥데이터를 지역 단위로 모으면 추천 업종은 물론 권장 메뉴까지 파악된다. 딥데이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통찰'을 준다.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이러한 딥데이터 비즈니스를 가장 잘하는 회사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비즈니스를 하나
“네이버는 영수증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등록하면 1건당 10원에서 50원의 포인트를 지급한다. 매년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카드 결제 건수가 200억 건쯤 된다. 현금, 제로페이, 간편결제, 상품권 등을 합치면 못해도 300억 건은 될 것이다. 네이버 하나만 놓고 봐도 연간 수천억 원, 수조 원의 새로운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또한, 매장들의 카드 매출 정산을 도와주는 캐시노트라는 회사가 있다. 여신금융협회에서 무료로 공개하는 카드 결제 데이터를 이용했을 뿐인데 기업가치가 벌써 4000억원에 이른다. 단순 결제 데이터만으로도 이런데 구매 목록이 포함된 딥데이터를 모으면 그 가치는 몇 배 몇십 배가 될 것이다.”
-매장에 돌아가는 혜택은 없나
“네이버는 데이터 수집의 대가로 소비자에게 포인트를 지급하지만 매장에는 1원 한 푼도 주지 않는다. 캐시노트는 매장이 생산한 데이터를 공짜로 받아 큰돈을 벌지만 오히려 매장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든 봉이 김선달이다. 플랫폼 기업은 처음엔 공짜와 무료를 미끼로 던지지만 헤게모니를 잡자마자 막대한 수수료를 부과한다. 카카오페이 현장결제 수수료는 처음엔 무료였지만 지금은 영세매장 카드수수료율 0.8%의 3배 수준인 2%를 넘는다. 배달앱도 처음엔 무료였지만 지금은 과도한 수수료로 공공 배달앱이 나올 지경이다. 누군가는 봉이 김선달이 되지만, 매장들은 그저 '봉'일뿐이다.”
-소상공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한동안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개념이 유행했다. 더 이상 고성장은 불가능하고 저성장은 당연한 운명이라 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며 아예 '총체적 리셋(Great Reset)'이 회자되고 있다. 거시적 차원은 물론 미시적 차원, 심지어 개인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다시 세워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판과 새로운 규칙이 시작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이다. 데이터는 미세한 사금(沙金)과 같다. 낱낱이 쪼개지고 분산된 데이터는 강바닥의 사금처럼 쓸모없는 모래알이지만, 모으고 합치면 금덩어리가 된다. 700만 소상공인이 생산하는 영수증 딥데이터도 마찬가지다. 생산자로서 그들은 엄연한 저작권자이다. 뿔뿔이 흩어지면 종이 쓰레기일 뿐이지만, 모으고 합치면 마치 '기본매출'과 같은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데이터를 모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소리바다를 기억하는가? 음원을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 나오자 당시의 가수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음반시장은 '리셋' 과정을 거쳐 연간 6조원이 넘는 시장으로 성장했는데, 디지털 음원의 생산자인 가수,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 수만 명은 불과한 15% 정도를 나눠 받는다. 재주는 곰이 넘는데 돈은 왕서방이 챙긴 격이다. 만약 소리바다의 탄생 시점에 생산자들 스스로가 헤게모니를 구축했다면 어떻게 바뀌었을까? 데이터 시장의 미래도 이와 똑같다. 그런데 700만 소상공인들은 아예 이 시장의 참여자라는 인식조차 없다. 소상공인들을 하나로 묶어 소중한 디지털 자산을 모으고 그 열매를 공정하게 분배할 구심점이 절실하다.”
-현실적인 문제점은
“소상공인들이 규합하거나 참여자를 모으는 것은 오히려 쉬울 수 있다. 교통카드, 제로페이, 경기도 배달특급 등과 같은 공적 사업들은 처음엔 정부나 지자체 주도로 시작하지만 그 뒤편에는 LG-CNS, 웹캐시, 페이코와 같은 민간 사업자들이 그림자처럼 파고들어 있다. 비전을 가진 누군가가 '깃발'을 꽂고 북을 울리면 민간의 참여자들은 저절로 모인다. 일종의 민자 SOC 사업과 같은 구조일 것이다. 오히려 풀기 어려운 문제는 매장마다 천차만별인 인프라 그 자체다. POS나 카드 단말기의 종류만 해도 수백가지인데 서로 호환이 되지 않는다. 이미 망한 회사의 서비스를 그대로 쓰고 있는 매장도 수두룩하다. 대응해야 할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우니 데이터를 모으고 싶어도 물리적인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대안이나 해결책이 있나
“최근 공공 배달앱 가맹점을 늘리는 목적으로 POS 컴퓨터와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주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매장 하나당 1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디지털 SOC라는 명분이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야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코로나 QR 체크인을 위해 많은 수의 매장들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자발적으로 설치했다는 점이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은 카메라는 물론 무선네트워크와 터치패널이 기본 장착된 일종의 컴퓨터다. 매장에 이미 깔려있는 기존 POS나 카드단말기와 조화롭게 연결시키면, 제로페이를 포함한 QR 간편결제나 셀프오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매장의 데이터를 제대로 모아낼 수 있다. 별다른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일종의 '재활용' 방법론이다. 소상공인이 주인 되는 데이터 플랫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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