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헝다그룹 사태의 심각성은 국유화

앤트 등 빅테크에 이어 부동산까지 정부 통제
리먼사태까지 안 가겠지만 전 세계 파장 촉각
2021-09-27 09:51:37

중국 2위의 부동산개발업체 헝다(恒大)그룹의 파산 가능성이 제기 되면서 금융 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헝다그룹 파산설은 올 봄부터 나왔지만 9월 들어서면서 위기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9월7일)와 피치(9월8일)는 헝다와 그 계열사의 신용 등급을 각각 두 단계 낮췄다. 특히 피치는 지난 6월22일 이후 헝다그룹의 등급을 세 차례나 하향 조정해 파산 가능성을 경고해 왔다.

파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였던 9월23일 이슈인 위안화 채권 이자 지급의 경우 협상을 통해 간신히 돌려 막았다. 하지만 달러 표시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더욱이 계열사인 헝다자동차 등에서 직원 임금이 체불되고 협력사에 지급해야 할 대금도 미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헝다그룹으로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셈이다.

헝다그룹의 위기는 대출을 통해 무리하게 추진한 성장 전략이 중국의 정치 지형의 변화로 인해 타격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1997년 부동산개발회사로 시작한 헝다그룹은 대출로 토지를 구입해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중국에서 부동산 열풍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2~2018년 기간 동안 연평균 40%대 성장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부동산 사업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헝다그룹은 금융과 에너지, 전기차, 헬스케어, 식품, 레저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한때 계열사가 2000여개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필연적으로 재무 구조의 악화를 초래했다. 2020년 그룹의 부채 비율은 557%로 치솟았고, 부채규모 또한 약 2조위안(360조원)으로 늘어났다. 

헝다그룹의 위기는 차입을 통해 무리하게 추진한 성장 전략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시작되었다. 시진핑 주석의 집권 연장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공동부유(共同富裕)’ 주창을 계기로 정치가 경제에 간섭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부동산 부문에 대해서도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잡고 양극화를 해소한다면서 부동산업체에 대한 모니터링과 통제를 강화했다. ‘3개의 레드라인(부채비율 70% 미만, 자금조달비율 100% 미만, 단기부채비율 1배 미만)’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신규 대출과 부채 확대를 제한한다는 발표가 대표적이다. 차입 경영에 의존해온 헝다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헝다그룹이 파산하게 된다면 2008년 리먼 사태와 같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헝다와 리먼 사태는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으나, 위기(파산)의 성격과 과정에서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치는 영향은 다를 것이다.

 

2008년에 발생한 리먼 사태의 경우 부동산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버블이 터질 때까지 숨긴 금융기관의 탐욕이 위기의 본질이다. 더욱이 리먼을 포함한 미국 금융기관의 모기지 채권은 세계 시장으로 팔려나갔기 때문에 금융위기도 글로벌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반면 헝다그룹의 사업 영역은 중국 내에 국한되어 있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위기의 원인 또한 시장의 왜곡이 스스로 드러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에서 리먼사태와는 차이가 있다. 위기의 원인이 다르면 처리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부른 위기라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를 줄여나가는 등의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일 나온 S&P 보고서도 중국 정부의 개입을 이유로 들면서 “헝다의 파산이 2008년 발생한 금융 위기 수준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2008년 금융위기에 비해 작다고 헝다그룹 사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중국 정부가 피해자 구제를 명분으로 그룹 내 부동산 사업부문을 국유화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중국 정부는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부문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손보기 작업에 들어갔다. 통제가 어려운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결국 굴복시켰다. 알리바바 설립자인 마윈(馬雲)도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계열사인 앤트그룹의 지분 일부와 플랫폼의 국유화에 동의했다. 이번에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마저 국유화의 길을 걷게 된다면 경제의 양대 축인 플랫폼 기업과 부동산 기업이 모두 정부의 통제 아래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헝다그룹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이제 더 이상 중국에서 대마불사와 부동산 시장의 성장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려진 더 큰 문제는 헝다그룹의 무분별하고 방만한 경영 형태가 중국 정부로 하여금 주력 산업을 국유화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시장경제의 단점을 사회주의적 가치를 통해 바로 잡는다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모험주의가 등장해 글로벌 경제를 뒤흔드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이원호 비즈빅테이터연구소 소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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