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세계경제의 화두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무제한 양적 완화와 글로벌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지난해부터 주요국의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많은 돈이 풀린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주목을 받았다. 2021년 1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CPI)는 전년 대비 7.0% 오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982년 6월 이후 최고 수치에 해당한다. 월가의 전문가들이 경고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이에 따라 시장은 연 초부터 미연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 하는 한편, 인상 시기와 횟수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실 미 연준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금융·통화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단행해 올 3월에 마무리할 예정으로 있었다. 또한 3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준금리의 인상 횟수도 처음에는 연 3~4회 정도 언급되었으나, 치솟는 물가 상황을 고려해 연 7~8회 단행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핵전쟁 다음으로 위협적’이라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첫 번째 과제로 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 사회의 러시아 제재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에너지발(發) 인플레이션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마당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고유가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쟁 시작과 동시에 국제 유가는 순식간에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러시아의 석유 수출이 중단된다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유가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 물가상승(인플레이션)과 함께 경기가 침체(디플레이션)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 과거 두 차례 발생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반의 시기로, 1, 2차 오일쇼크가 주원인이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때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소비자 물가는 10% 이상 급등하는 등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포가 엄습했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해서는 ‘수요견인 인플레이션(demand-pull inflation)’과 ‘비용상승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의 경우 총수요의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데, 경기활성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반면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은 금리, 임금, 원자재 가격의 인상 등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으로 실물 경제의 악화(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는 악성 인플레이션에 해당한다. 이러한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이 급격하게 진행되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어려움은 물가상승(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디플레이션)의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마땅한 정책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다면 경기 침체를 피하기 힘들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양적 완화를 단행한다면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1980년대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방점을 찍는 정책을 폈다. 당시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20%대까지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 결과 물가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지만, 1980년대를 통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급격하게 잃어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 7일 KDI가 발표한 ‘3월 경제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로 주요국 주가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면서 “국제유가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 가격이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로 급등하면서 우리 경제에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진행되는 동안에는 중앙은행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책이라는 말이 있다. 한은도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섣불리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기 보다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정책 수단을 아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원호 비즈빅테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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