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대선공약보다 물가안정이 우선

우크라이 전쟁, 中도시봉쇄 등 외부요인으로 물가급등
물가 방치하면 향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배제 못해
2022-04-11 13:46:44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한 물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3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0년 3개월 만에 최고치인 4.1%를 기록했다. 작년 10월 3.2% 물가 상승률 이후 계속되는 ‘3%대 물가’도 버거운 마당에 불과 5개월 만에 ‘4%대 물가’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와 중국 상하이 봉쇄와 같은 외부 악재가 연달아 터지고 있어 현 수준의 물가 상승률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 5일 ‘3월 소비자물가 동향‘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에너지, 곡물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공급망 차질도 우려되고 있어 당분간 상승폭이 유지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한국은행도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3.1%를 크게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4%대의 물가 수준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 내역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외부 요인이 가장 크다. 통계청 보고서에 따르면 석유류·가공식품을 포함한 공업제품은 전년 동월 대비 6.9% 오르며 전체 물가를 2.38%포인트(p)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석유류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31.2% 오르며 전체 물가를 1.32%포인트 올렸으며, 가공식품도 6.4% 오르며 전체 물가를 0.55%포인트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의 상승이 물가 상승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의 물가 수준에서 외부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환경 변화가 있어야 국면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장기화 양상을 띠고 있고, 글로벌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중국 경제도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상황이 호전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물가의 고공 행진이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정부가 내 놓을 정책이 마땅치 않다는데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그나마 유용한 수단이 되겠지만, 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와 경기 침체의 우려를 감안한다면 금리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오는 14일에 개최될 금융통화위원회는 사상 처음으로 한은 총재 공백 속에서 열려 기준금리 인상과 같은 중요한 의제는 다음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급박한 경제 상황에 실기(失期)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새 정부를 준비하고 있는 인수위도 3월 물가 쇼크를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6일 “물가를 포함한 민생안정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며 특단의 대책을 지시했다. 또한 인수위는 오는 14일 한은과 비공식 간담회를 갖고 물가를 포함한 현재의 경제 상황과 리스크 요인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 외에는 당장 뚜렷한 수단이 없는 가운데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50조원 규모의 추경 예산 편성과 부동산 규제 완화 움직임은 향후 내놓을 물가 대책 효과를 반감시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기 진작의 유혹은 있겠지만 당장은 물가 안정에 최우선 과제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 추경 예산 편성을 보류하거나 분할 편성을 통해 물가 대책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물가가 불안하면 향후 경제 운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물가를 방치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물가 상황이 외부 악재에 기인한 것인 만큼 대응이 마땅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강조한 ‘경제 원팀’은 최소한 물가 대책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어 정책적인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 지금은 대선 공약을 점검하고 인기 위주의 정책을 펼칠 때가 아니다. 현시점에서는 물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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