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미연준·Fed)가 지난 5월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한 후 올해 몇 차례 더 할 수 있다고 예고해 한·미간 금리 역전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미간 금리가 역전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미국 시장을 선호하는 자본의 특성상 우리나라에 투자된 외국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6월 미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를 0.5%p 인상하고, 한국은행이 오는 26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는 1.5%로 같아진다. 한국은행이 6월 0.25%p 금리를 인상해도, 미국의 경우 빅스텝이 6월에만 국한되지 않고 계속될 것으로 보여 금리 역전은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사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미국에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모두를 고려해 그동안 0.25%p씩 두 차례 인상한 후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미연준은 지난해까지 만해도 당시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비둘기파적 성격이 강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미연준은 양적 완화 축소와 금리 인상과 대차대조표 축소를 단계별로 추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 해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미연준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파월 미연준 의장도 연일 매파적 발언을 이어가 미국의 기준 금리는 연초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 전문가들은 올해 말 미국의 기준 금리가 3%대에 이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며, 도이치방크에서 나온 보고서의 경우 5~6%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한국은행은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 처음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치솟는 물가가 우려스럽지만 경기 침체 가능성과 함께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은 가계 부채와 부동산 등 풀어야 할 문제가 한 두 개가 아닌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후보자 신분인 지난 4월 금리 역전에 관한 국회 답변에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양호하기 때문에 자본유출 압력을 받더라도 대규모 유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는 한은 차원에서는 빅스텝과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미연준이 지난 5일 빅스텝을 단행한데 이어 6월과 7월에도 연속으로 빅스텝의 가능성이 제기되자 한은의 입장도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회동 후 가진 인터뷰에서 “향후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물가뿐만 아니라 국내외 금리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동조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데 과거 사례를 보면 한·미간 금리 역전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금리 역전은 총 세 차례로 각각 ▲1999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 2007년 9월 ▲2018년 3월~2020년 2월에 있었다. 이 중에서 두 번째 역전 기간에 해당하는 2005년 8월부터 2007년 9월 중 유출된 외국인 자금은 약 263억 달러로 시장에 어느 정도 충격을 주었지만, 첫 번째인 1999년 6월~2001년 3월의 기간에는 오히려 210억 달러의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기도 했다. 자본의 유출입이 국내외 금리차이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주열 전 한은총재도 지난 2017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미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이 우리 통화정책에 주요 고려 요인임은 분명하지만 구속요인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한·미간 금리 역전으로 인한 자본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본유출을 촉진하는 하나의 요인이긴 하지만, 자본의 유출입이 내외금리 차이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미간 금리 역전이 우리 경제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금리 차이가 많이 벌어지거나 역전 기간이 길어지면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결코 방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리 역전이 대규모 자금 유출을 초래하진 않았다는 과거 사례를 감안한다면 굳이 동조 인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국내 경제 상황을 우선시하는 통화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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