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경계해야 할 칩4 리스크

中, ‘상업적 자살’ 위협 현실화 될 수도
美생산력 증대로 국내 생산 위축 대비해야
2022-08-16 09:48:03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4국 동맹, 즉 ‘칩4’의 합류 결정을 앞두고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다. 칩4는 반도체 기술과 장비, 소재, 생산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한국, 대만 4개국 반도체동맹으로 미국의 제안에 일본과 대만은 크게 주저하지 않고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다만 우리는 반도체 최대 수입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미국은 8월말까지 가입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철저하게 국익의 입장에서 접근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제외한 미·일·대만의 참여 목적은 명확하다. 미국은 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자국 내 제조 시설을 구축함과 동시에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4국 동맹을 통해 중국 견제의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빼앗긴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한다. 대만은 경제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칩4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칩4 참여로 인한 득과 실이 뚜렷하게 공존하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먼저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반도체 제조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제조, 특히 메모리 부문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지만 미국의 반도체 설계와 원천 기술, 일본의 소재·장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반도체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대다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결국에는 칩4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칩4 참여로 인한 최대 리스크는 중국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은 768억 달러로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홍콩 포함)에 달한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큰 만큼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칩4 가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시도에 대해서 한국이 중재자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칩4 내에서 미국이 의도하는 중국을 견제하는데 따라가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한국과 중국은 시장 규율을 위반하는 행동을 함께 저지하고 양국과 세계 공급망의 안전과 안정을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정부에 ▲독립자주 견지 ▲선린 우호 견지 ▲개방과 윈-윈 견지 ▲평등·존중 견지 ▲다자주의 견지라는 5개의 마땅함(應當·원칙)을 제시해 칩4에서 배제된 중국의 불편함을 드러냈다. 또한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한국이 칩4 가입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면서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60%를 차지하는 중국과 교역을 중단하는 것은 상업적 자살”이라는 표현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칩4 가입 결정이 가져올 중국 발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 2의 사드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하지만 한국산 반도체가 없다면 중국의 IT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중국 정부가 보복 카드를 강하게 꺼내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사드 보복 당시 중국 정부의 요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관광, K-팝 등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 주력 제품들의 대중국 수출은 오히려 늘어났던 경험이 있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한·중 간 분업 관계를 중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허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칩4 가입의 득실을 따질 때 미국 리스크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칩4를 주도하면서 자국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칩4의 일환으로 최근 미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은 ▲미국 내 제조업 역량 강화 ▲중국 견제 ▲한국, 대만 의존도 줄이기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내 반도체 생산이 위축될 가능성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칩4 가입 결정을 앞두고 미국과 예비회담이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이후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몰락하고 소재·장비 쪽으로 방향을 돌린 사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익 우선은 물론이고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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