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美서 직격탄 맞은 한국 전기차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 후 부랴부랴 협상단 파견
예외 조치 받아낼 수 있도록 민관 총력 기울여야??
2022-08-23 09:34:56

바이든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 미 의회를 통과했다. 물가를 잡겠다는 의미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 이름이 붙어있지만, 이 법안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주목적으로 보인다. 친환경 에너지 기업을 지원하고 전기차를 구입할 때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확대하는 것이 인플레 감축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대기업에 증세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얼핏 기후 변화 대응이 물가 상승 완화와 상관관계에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 법안의 효과를 두고 논쟁이 되고 있다. 인플레 감축법이 중·장기적으로는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지만 당장 치솟는 물가를 잡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펜 와튼(Penn Wharton)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법안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으며, 향후 5년간 연 인플레이션의 0.1%p 정도 줄이는데 그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특히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증세 중심으로 되어있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미국 의회 지도부에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 법안이 인플레이션 감축과 완전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의 지나친 사용이 이상 기후 현상을 유발하고, 이로 인한 폭염과 가뭄이 식량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이 현재의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 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친환경 에너지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 다양한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한다면 현재 문제가 되는 물가 상승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도 인플레이션 억제와 관련해 단기적인 효과에는 부정적이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일부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안이 기후 변화 대응에만 그치지 않고 중국 견제를 함께 추진하면서 그 불똥이 엉뚱하게도 우리 기업으로 튀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견제에 사로 잡혀 중국보다 더한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미국 내에서 제작된 제품에 한해서 보조금을 지급한고 발표했는데, 시행 시기도 유예 기간이 없이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과 동시에 발효된다는 것이다. 또한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원자재도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의 원자재를 40% 이상 사용해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80% 이상 사용을 명시해 중국산 배터리를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축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혹은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대상 차종은 5만 5000달러 이하 전기 승용차와 8만 달러 이하 전기 SUV 및 픽업트럭으로 되어 있다. 이 경우 현재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모델(아이오닉5, 코나EV, 제네시스 GV60, EV6, 니로EV)은 모두 세액 공제에서 제외된다. 그 동안 가격 대비 뛰어난 품질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서 선전했던 현대차그룹의 마케팅 전략이 한순간 사라질 처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미국의 중간 선거를 의식해 중국 때리기에 나선 바이든 정부의 조급함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는 안도감으로 안일하게 대처한 우리의 책임도 크다. 인플레 감축법 발표 후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고위 관료를 미국으로 보내 협상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부 장관도 피해가 예상되는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간담회’를 개최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을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때 정부 간 협상보다는 해당 기업 혹은 민간단체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의 노력과 별개로 그동안 미국의 정·재계는 물론 소비자 단체와 꾸준하게 접촉해 온 대한상의나 전경련 등의 민간단체가 나서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예외 조치를 받아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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