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율의 폭등세(원화 가치의 하락)가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은 8월 24일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340원이 무너진 후 불과 열흘 만에 1380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6거래일 간 43.1원이나 뛴데 이어 9월 초에도 다시 한 번 큰 폭으로 뛰었다. 환율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변동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금융위기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두 차례뿐인데 지금도 1400원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원인에 대해 한국은행은 ▲미연준의 계속되는 금리인상 ▲중국의 경기침체와 미·중 갈등에 따른 위안화 약세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 지속 등을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언급한 요인들이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원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먼저 지난해 제로금리에서 출발한 미국 금리는 올해 들어 연속 인상으로 2.25~2.5%까지 올라간 상태다. 더욱이 파월 미연준 의장은 잭슨 홀 미팅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위협에 대응해 금리인상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올해 금리를 인상할 기회가 세 차례 남아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두 차례에 불과하다. 미국의 금리가 연말에는 4%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한·미간 금리 역전이 심화되어 향후 환율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중국에서 경기 침체가 가시화 되고 미·중간 갈등의 격화로 인한 위안화 약세가 원화 환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화는 지난 20년간 중국경제와 동조화로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대용 통화)’로 간주되어 왔는데, 최근 불안한 중국 경제를 반영해 위안화에 대한 투자 가치가 떨어지면서 대용 통화인 원화도 덩달아 외환시장에서 외면을 받게 된 것이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역수지의 적자 지속 또한 환율 방어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수출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우리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중국의 위안화와 일본의 엔화의 가치도 함께 하락하고 있어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를 크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언급한 원화 약세의 세 가지 원인은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닐뿐더러 외생적인 요인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원화 가치가 앞으로 더 떨어질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며, 후자는 우리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정책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히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돌파했을 때 정부와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이 모여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구두개입 발언을 내놓았지만 시장에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이는 환율의 급등이 내부 요인보다 외부 요인이 더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여러 가지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원화 가치의 하락을 막을 뚜렷한 반전 카드마저 부재해 전문가들은 심각한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은 달러의 유출이 가속화될 뿐만 아니라 국내 물가 상승을 초래해 기준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한다. 결국 고환율 상황이 지속되면 금융시장과 실물 경제 모두에게 타격을 주어 위기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환율 급등은 대외적인 요인이 더 크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환율 방어의 마지노선을 정하고 외환보유액을 투입하는 등의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더 이상의 환율 상승세는 꺾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테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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