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약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20일 엔/달러 환율은 도쿄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150엔을 넘어섰다.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 여기는 150엔을 넘어선 것은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이다. 엔저의 1차적인 원인은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미일 금리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그동안 글로벌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었던 엔화가 속절없이 무너지자, 전문가들은 엔저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함께 향후 미칠 파장을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당장 엔저가 가속하면서 무역적자가 확대하고 물가가 급속히 오르는 등 일본 경제 전체에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폐가치가 수입 물가가 상승하는 반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해 무역수지는 호전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엔저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먼저 달러화가 전 세계 대부분의 화폐에 대해 강세를 보여 경쟁국인 한국이나 중국 화폐 가치도 달러화 대비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엔화 가치가 약 30% 하락(115엔에서 150엔)하는 동안 원화 가치도 20% 가량 떨어졌다. 중국의 위안화도 지난달 달러당 7.2 위안으로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엔화만큼은 아니지만 달러 대비 동반 하락해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을 상쇄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버블 붕괴 후 일본의 수출 환경 변화를 들 수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수많은 일본 수출 기업들이 엔고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수출 기업의 대부분은 소재·부품·장비를 주력으로 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이며, 완제품 중심의 대기업들은 중국과 동남아 등 제3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 유럽 등 또 다른 제3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일본의 수출 산업이 엔저 효과와 무관한 방향으로 변화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엔저가 수입 물가 상승만 초래해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게 된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돌파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응책은 제한적이다. 미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비래 일본 은행은 초저금리를 유지해 ‘달러 매수-엔 매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과다한 국가 부채에 발목이 잡혀 금리 인상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21년 기준 257%로, 국채 금리가 1% 오르면 원리금 부담이 늘어나 국가 부채가 매년 2%p 가량 늘어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넘어서면서 일본 정부와 은행이 대규모 개입에 나설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일본 재무상은 환율이 150엔대까지 상승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급속한 변화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발언으로 시장 개입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미연준이 올해 안에 몇 차례 더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외환 시장에 대한 개입만으로는 급속하게 진행되는 엔화 가치 하락을 진정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달러당 150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 관심은 150엔 시대가 가져올 파장에 쏠리고 있다. 당장 심각한 국력 저하가 예상된다. 2010년 중국에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어준 지 12년 만에 3위 자리마저 독일에 내줄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독일 GDP의 3배에 달했던 일본 경제는 불과 10년 만에 추월당할 처지가 된 것이다. 또한 최근 발표된 IMF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는 엔저로 인해 일본의 1인당 GDP가 조만간 한국과 대만에 추월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1인당 GDP는 지난해 대비 12,5% 줄어든 3만 4360달러인데 비해 대만은 3만 5510달러로 일본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고, 한국은 3만 3590달러로 불과 770달러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 경제가 정체기를 겪었다면 앞으로 150엔 시대에는 선진국에서 탈락 위기에 처하는 등 대세 하락기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일본 경제를 지탱해 온 산업 경쟁력마저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은 일본 경제의 대세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본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자동차 산업도 전기차 부문으로 가면 후발주자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는 선두주자인 미국, 중국에 한참 뒤져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 상대인 한국에 비해서도 앞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일본 경제는 과거 잘나가던 시절의 타성에서 벗어나 과감한 구조조정과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이 IMF 구제금융 이후 사회·경제 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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