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커피 심장부, 볼라벤 고원을 가다> ②볼라벤 고원에서 희망을 심는 최한용 대표

클럽그린 15년 전 라오스 허가 받아 갖은 고생끝 일궈
바둑판처럼 정리된 45만평에 게샤 등 아라비카 키워
스페셜티 커피 생산이 꿈…라오스에도 기여하고 싶어
신진호 기자 2023-12-29 11:12:07

커피나무는 꽃이나 과실류와 달리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이클(continuous growing cycle)이라 한 나무에서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다. 이를 입증하 듯 라오스 볼라벤 고원에 위치한 클럽그린 커피 농장의 게샤(Gesha) 가지에 꽃과 열매가 동시에 달려 있다.  

팍세 시내에서 60㎞쯤 떨어진 참파삭(Champasak)주(州) 팍송(Paksong) 클럽그린(Club Green) 커피 농장에 가기 위해 오전 9시쯤 호텔을 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차량이 완만한 언덕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농장이 위치한 라오스 커피 심장부인 볼라벤 고원은 해발 1000~1300m에 이를 정도로 고원이지만 설악산과 같은 굽이굽이 산길이 아닌 쭉 뻗은 왕복 4차로가 놓여 있어 ‘시각적’으로 고지대를 오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대신 해발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압차로 귀가 먹먹해져 높이 올라간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볼라벤 고원에 위치한 클럽그린(Club Green) 커피 농장에 가는 길은 험난하다. 비포장 도로에 접어들면 차량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좌우앞뒤로 요동을 쳐 몸이 녹초가 된다.

포장길 40여분을 달리자 시청과 종합병원, 우체국 등이 몰려 있는 팍송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차량이 라오개발은행 팍송지점(Lao Development Bank Paksong Branch)에서 좌회전하자 비포장 황톳길인 테라로사(Terra Rossa)로 접어들었다.
클럽그린의 해발고도 1222m.


이탈리아어로 ‘붉은 흙’을 뜻하는 테라로사는 국내 커피 체인점 이름으로 사용되면서 커피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무암 풍화작용의 결과물인 볼라벤 고원의 황톳길은 ‘고난’ 그 자체다. 라오스 정부에서 자동차가 달릴 수 있도록 평탄화 작업을 했지만 우기에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자연스럽게 거북이 운행을 해야 한다. 도로 곳곳이 마치 두더지 굴 같으니 차량이 좌우·앞뒤로 요동치는 롤링과 피칭(Rolling and pitching)을 반복하면서 몸이 어느 새 파김치가 됐다. 간혹 소떼를 몰고가는 목동도 있어 운전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마침내 22㎞ 황톳길을 달려 1시간 40분여 만에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은 해발 1222m 고지에 자리 잡았지만 평지처럼 평탄했다. 12월말이지만 20℃가 넘어 그늘이 없는 곳에서는 햇볕이 따갑게 느껴졌다. 

150헥타르(45만평)에 이르는 농장은 바둑판처럼 구획이 잘 정리되어 있었고, 커피나무는 마치 병정처럼 오(伍·가로)와 열(列·세로)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서 있다. 

아라비카는 직사광선을 싫어해 키 큰 그늘목이 있어야 웃자리지 않고 과육이 치밀하며 향미가 좋다. 

커피나무는 밝은 빛을 좋아하지만 직사광선(direct sunlight)은 싫어한다. 이로 인해 높이 1.5m 정도의 커피나무 주위에는 키가 큰 나무가 마치 양산처럼 서 있어 그늘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모습이 마치 사바나 풍경처럼 보였다. 그늘목이 없는 곳의 아라비카는 웃자라고 과육이 치밀하지 않아 향미가 떨어진다. 

볼라벤 고원의 붉은 토양은 마그네슘과 망간, 구리, 아연, 칼륨 등 미네랄이 풍부해 커피 농사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화산 토양이라 배수도 잘 된다. 연간 강수량이 3000㎜에 육박하고 평균 기온도 17~23℃로 선선해 볼라벤 고원은 아라비카 생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로부스타(Robusta)는 추위에 약해 보통 해발 700m이하에서 자라는데, 이채롭게 볼라벤 고원 1000m 이상 지역에서 로부스타가 자란다. 이 때문에 볼라벤 고원 로부스타는 다른 나라 로부스타에 비해 향미(Flavor)가 뛰어나다.

잘 익은 아라비카 SJ133의 붉은 체리가 수확을 기다리며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아라바카 품종은 티피카(Typica)와 버번(Bourbon), 카티모르(Catimor)가 주를 이룬다. 특히 카투라(Caturra)와 티모르 하이브리드(Timor Hybrid)의 교배종인 카티모르는 커피 녹병에 강해 생산성이 좋아서 농민들이 재배를 많이 하지만 향미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클럽그린 농장은 SJ133을 선택했다. 카티모르를 개량한 SJ133은 라오스와 태국에서 잘 자라며 수확량이 많고 향미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나무는 꽃이나 과실류와 달리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이클(continuous growing cycle)이다. 그렇기에 한 나무에서 커피 꽃과 덜 익은 열매(green fruit), 붉은 체리를 함께 볼 수 있다.

붉게 익은 커피 체리를 수확하는 피커(Picker). 전문 피커는 하루 평균 100kg의 체리를 딴다.

11월부터 두 달간 아라비카를 수확하는 클럽그린 농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문 피커(Picker)들이 손으로 붉은 체리를 따고 간 나무에는 재스민 향이 진동하는 커피 꽃과 함께 아직 익지 않은 풋 체리가 남아 있었다. 피커 한명이 하루에 따는 체리가 100kg정도라고 하니 이들의 손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 아라비카는 보통 수확 기간에 4번에 걸쳐 따는데, 이 농장에서는 벌써 세물을 땄다. 

클럽그린 최한용 대표가 커피나무와 수확을 앞둔 체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한용(68) 클럽그린 대표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나무는 게샤(Gesha)다. 5년 전 파나마에서 100여그루 넘게 들어와 심었지만 재배조건이 까다로워 현재 50여그루만 자라고 있다. 게샤가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으면서 라오스 정부와 농부들이 분양을 희망하고 있지만 최 대표는 성장을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최 대표는 2009년 라오스 정부에서 어렵게 클럽그린 농장 허가를 받아 2009년부터 잡목과 풀을 베어내고 암반을 깨고 돌을 골라냈다. 3년간 쉴 새 없이 개간(開墾)을 하니 커피밭 모양이 형성됐다. 100% 유기농으로 커피 농사를 지으며 희망에 부풀었지만 예기치 않은 냉해로 커피밭 상당수가 폐허로 변했고, 커피 녹병 등으로 애로를 겪었다.

더욱이 농부들이 가지치기조차 모를 정도로 라오스 영농기술이 떨어지면서 생산량이 베트남의 절반정도에 그친다. 창궐하는 병충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고 싶지만 농부들이 이를 꺼려 사용할 수도 없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 후유증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라오스 농부들이 자연농법을 선호하고 있는 이유라고 최 대표는 귀띔했다.

클럽그린 커피 농장에서 비닐을 펴고 수조에서 씻은 생두나 체리를 통째로 햇볕(Sun dry)에 말리는 모습.

클럽그린 농장에는 체리 껍질을 벗기는 허스킹(Husking) 기계와 점액질을 닦아 내는 수조,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갖추고 있어 농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나 아프리카 베드(Africa Bed) 등 건조 시설은 갖추지 않아 땅바닥에 비닐을 펴고 수조에서 씻은 생두나 체리를 통째로 햇볕(Sun dry)에 말리는 모습이었다. 15만 그루의 커피나무가 자라는 클럽그린에서 생산되는 체리는 연간 450t에 이른다. 

최 대표의 꿈은 단기적으로는 라오스를 대표하는 스페셜티(Specialty) 커피를 만드는 것. 농장에서 커피나무를 정성들여 가꾸고 잘 익은 체리를 선별해 가공에 신경을 쓰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본 투입이 필수적이라 고민이 많다.

최 대표는 장기적으로 커피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준 라오스와 이곳 젊은이들에게 무엇인가 꼭 보답해 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대규모 냉해를 입어 최 대표가 심은 커피 나무를 뿌리째 뽑아 놓은 농장의 한 블록에 라오스 정부에서 위탁받은 SJ133을 다시 심어 농가에 보급을 꿈꾸는 것도 그의 이같은 희망이 투영될 결과다. 

볼라벤 고원(Bolaven Plateau)에 위치한 클럽그린커피(Club Green Coffeee) 농장. 150헥타르에 이르는 농장은 나무가 하늘에 맞닿는 것이 보일 정도로 광대하다.

“커피 농사는 그림 같지만 할 짓이 못된다”는 최 대표. 그러면서 “커피가 아닌 바나나를 심었으면 떼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푸념한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에서 커피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커피는 최 대표에게 자식이다.   

황톳길 옆에서 자라 온통 붉은 먼지로 뒤덮인 커피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농장을 나서면서 다시 황톳길에 들어섰다. 이제 몸이 요동치는 차량에 적응됐는지 농장에 들어 올 때 보지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황톳길 양쪽에 자리 잡은 커피 농가의 마당이나 담장에 심어 놓은 커피나무 줄기와 잎이 길가를 달리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붉은 먼지로 온통 뒤덮여 있는 모습이었다. 하얀 커피 꽃 위에도 붉은 황토 먼지가 소복이 쌓였지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커피의 놀라운 생명력을 보면서 찬연한 슬픔이 몰려 왔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번 취재의 가장 큰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라오스 커피 취재 잘 왔어.’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한국 경제 둘러싼 리스크 해소해야

최근 정치적 이슈가 경제를 삼키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대외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재출

'빚 못갚는' 자영업자 1년새 42% 급증

한국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빚(대출)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