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싱가포르의 ‘풀스택 AI 허브’에서 얻어야 할 교훈
2025-08-25
2025년의 한국도 비슷한 변곡점에 서 있다. 정부는 소버린 AI 구축을 위해 톱5 컨소시엄(네이버클라우드·업스테이지·SKT·NC AI·LG AI연구원)을 선정하고, 단계적 경쟁을 통해 상위 팀으로 수렴하는 방식을 예고했다. 목표는 ‘최근 6개월 내 공개된 글로벌 최신 모델 대비 95% 이상 성능 달성’이다. 핵심은 모델 개발을 넘어 데이터·컴퓨팅·배포·운영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역량 경쟁이라는 점이다. 이제 과제는 소버린 AI가 실제로 한국 제조업 부흥의 매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가능하지만 ‘조건부 가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버린 AI는 데이터 수집과 정제, 학습과 검증, 배포와 운영까지 직접 설계하고 통제하는 자립형 AI다. 공장 데이터는 기업의 노하우이기 때문에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면 속도·보안·비용 면에서 한계를 겪기 쉽다. 반대로 이를 직접 확보하면 더 빠르게 개선하고 더 안전하게 확장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불량을 찾는 카메라가 단순히 표면 흠만 보는 것이 아니라 라인의 진동, 소음, 온도까지 분석해 고장 가능성을 사전에 알려주고, 자재 흐름과 작업 순서를 재배치해 대기 시간을 줄인다. 또한 설계팀은 반복적인 도면 작업을 자동화해 시제품 제작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결국 같은 인력과 같은 설비로 더 나은 성과를 내도록 돕는 도구가 된다.
핵심은 거대한 모델 하나가 아니다. 엔진만 좋다고 차가 빨라지지 않듯, 데이터 정리와 재학습, 배치, 모니터링과 보안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하는 운영 체계가 성패를 좌우한다. AI 모델을 연구실의 프로토타입에서 현장의 생산 도구로 바꿔주는 운영 방식을 뜻하는 MLOps는 현장에서 AI를 돌리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체계다. 따라서 IT 부서와 생산 부서는 “주당 불량률 30% 감소”와 같은 동일한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AI가 실제로 어느 부분에서 얼마만큼 효과를 발휘하는지 수치로 검증할 수 있으며, 기업 전체 차원에서 신뢰 가능한 성과 관리가 가능해진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이 뚜렷해졌다. 제조·R&D 용도로 특화된 모델과 사례가 2025년 하반기 기준 잇따라 공개되고 있고, “시연”보다 “절감·단축”이라는 결과가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글로벌 선도 공장들은 실제로 생산량이 2~3배 늘고, 불량품이 거의 사라지며, 에너지 사용도 30% 가까이 줄어드는 성과를 보여줬다. 이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제로 이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22일 발표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은 ‘AI 대전환·초혁신경제 30대 프로젝트’를 가동해 로봇과 자동차, 선박, 가전 등 제조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국가 AI컴퓨팅센터 확충과 첨단 GPU 대규모 확보 계획이 잇따라 나왔고, 정부는 ‘AI 국가대표’ 5개 컨소시엄을 선정해 단계적 경쟁·성과평가 기반의 지원 로드맵도 제시했다. 그러나 인프라 구축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조달·표준·안전평가를 통해 ‘AI를 쓰는 공장’이 성과만큼 대가를 받는 시장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기술·운영·제도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일이다. 기술은 불량을 잡고 고장을 예측하며 설계와 일정을 자동화해야 한다. 그리고 운영은 기존 관리 체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작은 AI가 기계 안에서 곧바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는 공개 시험과 국제 표준으로 신뢰를 쌓고, 성과는 불량률 감소·효율 향상·에너지 절감 같은 지표로 검증해야 한다. 말보다 숫자가 신뢰를 만든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전력 비용과 총소유비용(TCO)은 데이터센터 입지·요금·재생에너지 조달을 함께 개선해야 줄일 수 있고, 성능은 ‘최고’라는 주장보다 실질적인 숫자로 입증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으로 확산을 위해 경량 모델 개발과 구독형 서비스 등으로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일본이 1980년대 전자·메카트로닉스를 현장에 녹여내며 산업 반전을 이끌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소버린 AI라는 도전에 발을 들였다. 이를 통해 우리 제조업은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불량 제로, 맞춤형 생산, 에너지 절감, 신속한 신제품 출시가 가능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소버린 AI는 K-제조업의 부흥을 현실로 바꾸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티어연구소장(경제학 박사)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