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네오콘의 최후 생존자'이자 '슈퍼 매파' 중 하나로 평가받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제27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경질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어젯밤 존 볼튼에게 더 이상 그가 백악관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통보했다. 나는 그동안 그가 한 제안 중 많은 부분에 대해 완전히 반대했다. 물론 그런 반대는 우리 정부의 다른 인사들에게도 그렇긴 하지만"(His services are no longer needed at the White House. I disagreed strongly with many of his suggestions, as did others in the Administration)이라며 "나는 그에게 사임을 요구했고, 사직서가 오늘 아침에 제출됐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볼턴은 미국 언론사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분명히 해두자. 사임은 내가 제안한 것이다. 지난밤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라며 사임이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경질이든 사임이든 볼턴이 백악관의 중책을 그만둔 사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것부터 의아한 일이었다고 얘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최우선한다'는 국가주의(nationalism)를 진작부터 표방한 반면, 볼턴은 '자유주의에 입각해 보편적 자유와 인권을 위해 군사개입도 불사하는 것이 미국의 사명'이라는 이른바 글로벌리즘(globalism)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이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9.11 이후 지난 24년간 미국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을 해왔다. 그런데 이것을 치고 나온(반대한) 사람이 바로 트럼프"라며 "그런 트럼프가 미국의 이런 끊임없는 전쟁을 합리화하고 군사개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볼턴을 자기 보좌관으로 쓴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 역시 볼턴의 사임 사실과 그 파장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빅터뉴스가 온라인 미디어 심화분석 서비스 '펄스케이'를 활용해 최근 한 달간 '볼턴' 버즈량을 살핀 결과 그의 사임이 알려진 11일 하루 '볼턴' 버즈량은 7000건에 육박했다. 이는 지소미아 폐기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지난달 28일 "한일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볼턴 보좌관이 유감을 표명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청와대 해명이 그날 하루 2500여건 수준의 버즈를 발생시켰던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림2는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볼턴'과 함께 자주 언급된 키워드 30개를 추린 것이다. 그중 키워드 '리비아', '김정은', '모델', '북한', '실수' 등이 상위 연관어에 오른 것은 볼턴의 사임 사유에 대한 네티즌의 인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데이터다. 많은 네티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이 북한 김정은에게 리비아식 모델을 제안한 것은 그의 실수"라며 그를 경질한 이유를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대한 노선 차이 때문인 것처럼 밝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친여 성향 네티즌으로, 트럼프가 이른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인 리비아식 모델을 부정한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유화책으로 변화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한 트위터리언은 "오늘 트럼프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볼튼이 김정은에게 리비아식 모델을 주장하는 등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볼튼의 이러한 행동은 터프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이 트윗은 1320회 리트윗됐고, '좋아요'는 1180회였다. 트윗에는 "가슴이 뻥 뚫리네", "오늘부터 트럼프 재선 환영" 등 볼턴 사임을 환영하며, 그를 '경질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답글이 달리기도 했다. 한 커뮤니티에는 "트럼프가 북미 평화협정의 걸림돌이던 볼턴을 제거한 것"이라고 평가한 글이 1200회 이상 조회되기도 했다.
많은 국민들이 볼턴 사임이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로 연결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네이버 인링크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확인됐다. 그 점은 친문ㆍ친여 여부와는 관계가 없었다. 한 댓글은 "김정은, 문재인 경사 났네. 이제 핵무기로 돈 달라고 난리 피우겠네"라고 했다. 또 다른 댓글은 "볼턴이 그나마 강경파였는데"라고 써, 그의 퇴진이 대북 완화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반면 "볼턴보다 더 무서운(강경한) 사람 올지 어떻게 알겠나"라며 더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또 "쫓겨난 것이 아니라 잠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며 볼턴의 사임이 대단치 않은 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트럼프가 볼턴을 보좌관으로 앉힌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 이춘근 교수는 그러나 볼턴 해임을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제재 완화 심지어 북핵 인정까지 갈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 "미국 대외정책의 역사와 원천을 간과한 판단"이라며 "북핵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노선은 변함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교수는 지난 14일 게시한 그의 유튜브 영상에서 "미국의 CVID 정책의 원천은 2001년 9.11테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미국인들은 9.11에 여전히 원한이 사무쳐 있으며, 북한 같은 국가에서 생산한 단 한 발의 핵무기라도 그것이 미국 영토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여전히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형화된 북한의 핵무기가 테러집단에 넘어가, 작은 가방에 핵폭탄을 숨긴 테러리스트가 미국에 입국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미국 공항 검색대의 엄격한 단속 모습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단 한 발의 핵무기'도 용인하지 않는 것이 바로 CVID이며 CVID 폐기는 미국인들이 9.11의 분노와 공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볼턴의 전임자인 제26대 국가안보보좌관 맥매스터(H. R. McMaster)와 볼턴 재임기의 대북정책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환기하기도 했다. 북한 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이 안보보좌관 한 명의 의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지금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아니라 힐러리라고 하더라도 대북 정책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인사가 불안정하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7년 1월 20일 취임 이후 지금까지 그는 국가안보보좌관만 총 4명을 임명했다. 그중 초대 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은 24일만에 탈락하고 말았다. 두 번째인 케이스 켈로그(2017년 2월 13일~2월 20일)는 불과 7일 재임에 그쳤다. 세 번째인 맥매스터는 2017년 2월 20일부터 이듬해 4월 9일까지 총 412일간을, 네 번째인 볼턴은 2018년 4월 9일부터 이듬해인 올해 9월 10일까지 총 512일 재임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수잔 라이스를 총 1299일간 안보보좌관으로 앉혔으며, 콘돌리자 라이스는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총 1464일간 재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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