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는 'Personal Identity' 또는 'President Identity'의 준말로 흔히 최고경영자 등 주요 인물의 마음가짐(Mind IdentityㆍMI), 행동(Behavior IdentityㆍBI), 외모(Visual IdentityㆍVI) 등 세 가지 차원의 요인이 해당 인물의 이미지 구축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PI의 3요소 분석은 해당 인물의 일반 대중에 대한 설득력과 호소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빅터뉴스는 PI의 이런 개념을 원용해 우리나라 정치인, 경제인, 고위공무원 등 각 유명인들이 국민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소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살피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정계를 떠났던 원희룡 제주지사. 정치인 원희룡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 시ㆍ도지사 선거에서 60%에 달하는 득표율로 제37대 제주도지사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선 무소속의 불리함을 안고서도 51.7% 득표로 내리 2선하며 대권 잠룡의 반열에 올랐다.
'잠룡' 원희룡의 매력은 무엇일까. 1982학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수석 합격, 1992년 사법시험 수석으로 학력 면에서는 남다른 매력을 가진 정치인 원희룡에 대해 국민 대중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행동' 부문 평가부터 아래 그림 1과 그림 2를 활용하도록 한다.
◇ 행동(Behavior Identity)은? 대형이슈 밀어부치다 끝내 무릎... 지도자 이미지에 타격
그림1은 최근 1년간 키워드 '원희룡'이 포함된 버즈의 발생량(수집량) 추이를 나타낸 차트다. 분석도구는 온라인미디어 심화분석 서비스 펄스케이를 활용했다. 그림을 보면, 지난해 12월 5일 녹지병원 조건부 설립 허가가 발표되면서 원 지사의 언급량이 크게 치솟은 점이 확인된다. 이어 그림 2는 최근 1년간 키워드 '원희룡'이 포함된 SNS 게시물에서 '원희룡'과 함께 자주 언급된 단어 30개를 추린 것이다. 역시 키워드 '영리병원'이 가장 많이 언급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원 지사는 투자형병원(영리병원)이란 대형 이슈를 주도하다 끝내 좌절하고 만 아픈 기억이 있다. '행동' 부문에서는 영리병원 실패 이미지에서 벗어날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 지사는 지난해 12월 영리병원이란 대형 이슈의 한 가운데에 서며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허가 발표 후 4개월여만에 허가 취소로 돌아서고 말았다. 당시 다수의 친여 성향 누리꾼과 민주노총 등은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 죽어가는 현실이 원희룡의 손에서 시작됐다"고 선전하며 투자형병원 설립을 강력히 반대했다. 대한의사협회마저도 설립에 항의하기 위해 제주도청을 찾기도 했다. 결국 지난 4월 허가 취소가 결정됐고, 이후 원 지사에 대한 여론의 움직임은 겉으론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 문제는 친여 성향 누리꾼들이 원 지사를 비판하기 위한 단골메뉴로 지금까지도 이 영리병원 설립 시도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리병원 설립에 대해 국민적 공감이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섣불리 영리병원을 추진한 것은 원 지사에게는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허가 취소에 반발한 녹지병원과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다시 부각될 소지도 다분하다.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점은 그가 지도력을 키워가기 위해서 반드시 제대로 매듭을 지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연관도 3위에 키워드 '조국'이 등장한 것은, 최근 불거진 조국 법무부 장관 파문에 "조국아, 그만하자" 등의 발언으로 원 지사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다수의 친여 네티즌들은 이를 가리켜 '숟가락 얹는 행위'에 비유한다. 중앙정치 무대에 복귀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문제는 관련 버즈를 아무리 추적해봐도 조 장관을 반대하는 보수성향 네티즌들에게서조차 원 지사를 지지ㆍ응원하는 흐름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림 1에서 지난 8월 28일과 30일 모두 버즈가 치솟은 것은 대부분 '친구 조국을 배신했다'고 비난하는 친여 네티즌들의 게시물이 다수 발생한 데 따른다. 보수 네티즌들은 왜 조용한 걸까. 추정해보면, 지난해 1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여부가 주목을 받자, 원 지사가 '김정은이 한라산을 방문할 경우, 백록담에 헬기를 착륙시킬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에 일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커져만 가는 보수 시민들의 안보 불안감을 범보수 인사가 더 키우고 만 것이다. 지난해 11월 12일 이 발언이 보도된 후 관련 버즈를 추적해보면 다수의 보수성향 네티즌들이 원 지사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 지사는 당시 김정은 헬기장을 짓자는 말이 아니었다고 거듭 해명했으나 "어이 없는 처사" "이 사람도 간보다가 안되니 빠지네" "보수의 새 인물이라고 키워준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평가를 비롯해 기사에 옮기기 어려운 거친 욕설이 특히 트위터에서 상당수 보였다.
◇ 마음가짐(Mind Identity)은? 대중에게 각인된 뚜렷한 메시지 없어
지난 8월 25일 조선일보 인터넷판은 원 지사 인터뷰 기사를 냈다. ([인터뷰]원희룡 "내 정체성은 野, 보수통합 역할 할 것...황교안 리더십이 중요") 제목에서 보듯, 원 지사의 주요 메시지는 '나는 보수 정치인으로서 보수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메이저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자신의 정치노선이 어느 쪽인가를 설명하는 데 그친 것이다. 이른바 잠룡이라는 정치인이 겨우 내놓은 메시지가 정파적 정체성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은 뚜렷한 지지기반이 없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또 지난 7월부터 KBS 2TV 일요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고정출연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나, SNS에서 뚜렷한 반향은 발견하지 못했다. 도지사로서 제주와 제주관광을 홍보하는 데 기여하려고 한다는 메시지가 전파될 수는 있겠다. 도민에겐 정겨운 모습이다. 그러나 SNS에선 외려 '예능에 정치인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드문드문 보였다. 한 인터넷 카페에는 "누나가 제주도에 사는데 아직도 중국인들 싸우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고 한다. 예능보다는 제주를 안정화시키는 게 우선이 아닐지"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중매체 노출기회를 자신의 인간적 매력과 리더십을 전파하는 채널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 외모(Visual Identity)는? 잘생긴 듯한데... 호평도 악평도 없이 뜨뜻미지근
펄스케이로 키워드 '원희룡'과 '외모'가 모두 포함된 버즈를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버즈는 고작 15건이 수집됐다. 그마저도 원 지사가 아니라 '당나귀 귀'에 함께 출연한 가수 로운의 외모에 대한 평가였다. '당나귀 귀'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지진희 닮았다"고 평하기도 했으나, 네티즌의 반응은 없었다. 원 지사의 외모에 대해서는 호감도 비호감도, 호평도 악평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점 역시 더 큰 도약을 기대하는 대중정치인에게는 크게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상의 분석을 종합하면, 정치인 원희룡에게는 현재까지 든든한 지지부대나 우군이 보이지 않는다. 그를 정치무대에 데뷔시킨 자양분으로 톡톡히 역할을 했을 '수석 3관왕'이란 학력을 이른바 '뇌섹남'의 매력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드러나지 않는다. '공부 잘해서 성공한 사람'이란 아이덴티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최근 수년간 제주에 머물렀다는 사실로는 변명이 모자란다. 최근 '미투'로 주저앉기는 했지만 다른 광역단체장은 계속 중앙 언론의 이목을 끌어왔었고 팬덤도 두터웠다. 참여정부의 핵심이란 메시지가 분명했고, 정권을 지키려다 구속될 만큼 열정적인 행동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 공안검사 출신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에 앞장선 어느 정치인 역시 메시지와 행동에서 그렇게 인정을 받았기에 단번에 제1야당 대표에 오른 것이다. 원희룡 지사는 무엇으로 이들과 어깨를 견줄 것인가. 마음가짐을 드러내고 행동으로 호소하는 것을 더 이상 주저해선 안 된다. 적어도 잠룡을 자처한다면 그렇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