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는 검찰개혁이지만 결론은 조국 진퇴다.
지난 주말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친 여권 군중들이 초유의 대규모 검찰규탄 집회를 벌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 반발해 열린 이 집회의 규모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여당 대변인은 “200만”이라 주장했고, 서초구청장 출신 야당 의원은 “최대 5만”이라고 했다. 각종 SNS에서는 2016년 그룹 빅뱅의 일본 콘서트 실황(5만 5천명), 2017년 북한의 군중집회(10만명),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군중 사진(17만명)에 1934년 독일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70만명)까지 등장하며 숫자 논쟁이 벌어졌다. 한 쪽은 집회 참가자 숫자를 부풀리며 국민의 뜻이라 강변하는데 다른 쪽은 강남·서초·송파구 인구를 다 합쳐도 16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경찰도 이쪽저쪽 눈치 보느라 그 흔하던 ‘추산’도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도 질세라 10월 3일 개천절 150만이 모이는 광화문~서울역 집회를 예고했다. 200만이든 150만이든 누가 세어 보기라도 할 건가.
집회 인원 아닌 서명 인원을 두고 ‘100만 1000만’ 논쟁이 벌어진 역사가 있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 직선제 개헌 투쟁을 벌이던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100만인 서명운동을 하자”고 제안하자 YS(김영삼 전 대통령)은 “100만이 뭐꼬. 1000만명 정도는 돼야지”라고 했다. DJ가 “대한민국 인구가 몇 명인데 1000만명을 어떻게 채우느냐” 반대하자 YS는 “그걸 누가 세어 본다꼬” 반문하며 밀어붙여 결국 1000만 서명운동을 추진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엄혹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야당 지도자들이 뜻을 함께하는 국민들 숫자로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려 했던 30년도 더 된 시절 행태가 새삼 재현되고 있다. 똑같은 집회에 모인 사람 수가 5만이기도 200만이기도 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왜 이럴까. 조국도 윤석열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았나. 검찰개혁이든 조국 사퇴든 대통령과 국회가 풀어야 할 일 아닌가. 국민이 뽑아놓은 대표들이 처리 못한 일을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패를 나눠 싸우며 분열과 갈등을 더 키우게 하나.
주말 집회를 일컬어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을 개혁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 찬양했고, 자유한국당은 ‘정권의 불의를 수사하는 검찰에 대한 겁박’이라 비판했다. ‘조국 파면’을 주장하는 세력의 개천절 집회에도 정반대의 두 평가가 대기 중일 것이다. 몇 만이니 몇 백만이니 의미 없는 숫자 논란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조국 진퇴’의 칼자루를 쥔 윤석열 검찰총장은 29일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충실히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조국 장관은 30일 “국민들은 검찰개혁을 요구하며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며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묻고 있으며 선출 안 된 권력에 대한 견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 칼날을 겨누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을 선동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꺾여야 끝날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200만'이다 '150만'이다 지지자 몰이로 그 끝을 보려 하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 했다고 한다. 참여정치, 대중정치를 주장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는 민주정(democracy)을 혐오했다. 플라톤이 말한 ‘저질스런 인간들’은 중우정치(mobocracy)를 획책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자들이었다.
주말 집회에 참석한 인파는 영상 속 조국 장관과 함께 ‘홀로아리랑’을 합창했다. 5만인지 200만인지 논란인 군중들이 부른 가사 한 구절이 귀에 꽂힌다.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였을까. 5만이든 200만이든 하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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