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박모씨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그의 양손 손가락은 모두 합쳐도 5개밖에 안 된다. 젊은 시절 프레스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박씨가 받은 보상은 손가락 하나당 평균 5만원뿐이었다.
박씨는 전라도 시골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해 문래동의 금형제조공장에 취직했다. 선배들에게서 스패너나 망치 등의 도구로 머리를 맞으며 기술을 배웠고, 10여년 만에 최고 기술자 소리를 듣게 됐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받는 급여는 20만원(당시 막노동 하루 일당 1만원 수준)이 채 안 되는 박봉이었다. 더욱이 손가락이 잘려 결혼은 꿈도 못 꾸었다. 박씨는 “‘손가락없는 병신’에게 시집 올 여자가 있을 리도 만무해 환갑이 되도록 장가 한 번 못 가봤다"고 한탄했다.
손가락 잘린 보상금으로 하룻밤 술을 마시고 나니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박씨는 자신이 가진 기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막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지만 잘려나간 손가락과 우리 사회의 푸대접으로 박씨는 금형제조를 '뒤도 돌아보기 싫은 업종‘으로 여긴다.
박씨와 같은 소공인들이 모여 있는 집적지는 전국 1531곳, 업체는 16만3000개(2017년 기준)에 이른다.
소공인 집적지의 기계가 멈추면 현대자동차와 삼성휴대폰 공장의 생산이 중단된다. 소공인들이 대한민국 제조산업의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젓가락 문화’에 힘입어 대한민국 소공인들의 손기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실제로 2년마다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최정상급 성적을 올리고 있다. 대한민국 소공인들의 손기술은 스위스의 손목시계, 독일의 쌍둥이 칼, 이탈리아의 핸드백 등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들보다 월등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멸시와 천대뿐이다. 이로 인해 박씨처럼 장인들이 업계를 떠나면서 뿌리 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지난 2018년 일본과 위안부 문제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산업에 대한 사회적 이목이 쏠릴 당시 처우 개선 기대를 은근히 걸어보았지만 허사였다.
도시형 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약칭 소공인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6년째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에는 소공인 전담부서는 고사하고 소상공인정책실 지역상권과의 사무관 1명과 주무관 1명이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통계청의 2017년 전국사업체조사를 보면 전국에 35만9000개 사업장과 116만6000명이 종사를 하고 있지만 이들 소공인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743억원에 그친다.
정부의 소공인 지원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전통시장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전통시장에 지원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은 매년 4000억원에 이른다. 종사자는 30만명 수준인데도 소공인 지원과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소공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말로만 뿌리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지원은 인색하다”며 “대한민국 산업의 주춧돌인 소공인들이 멸시와 차별, 낮은 인금 등으로 업계를 떠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물론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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