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에 피해를 당했다는 중소기업들이 깊은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달 SK이노베이션과 관련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요청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대가로 적극적인 협상을 약속했던 LG그룹이 자꾸 말을 바꾸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협의회 내부에선 ‘또 당했다’는 자괴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김성수 LG그룹피해자협의회 회장에 따르면 김 회장과 시민단체 구국실천국민연합은 지난 24일자로 구광모 LG그룹 회장 앞으로 ‘피해보상에 대해 적극적인 협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앞서 LG그룹피해자협의회는 지난달 9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 ITC 판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계획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같은달 11일 자정(현지시각), 한국 시간으로는 12일 오후 1시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LG그룹의 기술탈취·상표도용·갑질 등 부당행위를 널리 알리고, 거부권 행사의 당위성을 강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협의회 측은 예정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김 회장은 “지주사 소속 이모 사장 등 임원들이 기자회견을 취소하면 피해 보상을 적극적으로 협상하겠다고 연락해왔다”며 “지금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SK의 사주를 받았다는 오해와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LG측 변호사에게서도 전화가 왔다고 한다.
피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LG와 대화를 통해 원만한 합의를 보는 것이 났다는 판단이었다. 또다시 대기업과의 끝없는 소송위기에 놓을 수 있다는 부담감도 컸다. LG측에서 먼저 연락해온 만큼 이번에는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기자회견이 취소되고 이틀 후인 지난달 11일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구 LG화학)은 ‘배상금 2조원’에 배터리 분쟁을 마무리했다. 양사는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소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LG는 이번 사건을 통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메이드 인 한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최근엔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경제사절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LG그룹피해자협의회 측은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김 회장은 “기자회견 취소 이후 LG 측과의 첫 만남까지는 긍정적인 분위기였다”며 “이 자리에서 상생안 형태의 보상안을 제시했고 자리 말미에 협상이 잘되면 세계적인 배터리를 만들 아이디어가 있다는 사실까지 언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이후 LG 측의 말과 태도가 달라졌다”며 “어느샌가 우리가 입은 피해보상에 대해선 말이 없어지고 대신 첫 만남 말미에 언급한 배터리 기술 문제에만 관심을 보였다. 피해보상과 상관없는데도 배터리 기술 자료를 가져오면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최후통첩성 내용증명을 보낸 셈이다.
김 회장은 “(LG가) 급할때는 협상한다고 해놓고 이제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사장이 직접 약속해 놓고 왜 지키지 않느냐"며 "피해기업들은 여전히 고통속에 살고 있다. LG전자 디자인 상표 도용을 주장하는 한 작가는 지금도 1인시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국에선 중소기업들 피해주고 외국가선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지난 배터리 관련 미국 ITC의 판결에서 볼 수 있듯 미국에선 기업의 기술 자체는 물론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 대한 보호가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런게 무시되고 있다”며 “이런 토양에선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LG그룹 측은 "(기자회견 취소 요청) 당시 피해 배상과 배터리 분쟁 거부권 행사 요청, 이 두 사안의 연관성이 없어 그 배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시위의 시기와 내용이 적절한지 재고가 필요하지 않나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라며 "피해 보상 관련해서도 과거 법원, 경찰, 공정위 등 법리적 판단이 종결된 사안이어서 향후 다른 상생방안을 제안하면 검토해 보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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