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2월호’를 통해 경기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공식화한 바 있다. 높은 물가 수준과 더불어 완만한 내수 회복속도, 수출 부진 및 기업의 심리 위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경기 둔화의 이유로 꼽았다. 지난해 6월 이후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는 경고를 8개월 동안 계속 이어오다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그린북 5월호를 보면 경기 둔화가 여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린북 5월호에 따르면 “우리 경제가 내수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수출과 설비투자 부진 등으로 제조업 중심의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내수 부진이 다소 완화되면서 급격한 하강세는 진정되었지만, 큰 폭으로 감소하는 수출 요인으로 인해 경기 부진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둔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각종 지표들도 경고음을 내고 있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사항은 ‘수출 감소 및 무역 적자 지속’이다. 올해 들어 수출은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1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6.4%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2월 –7.5%, 3월 –13.6%, 4월 –14.2%를 나타내고 있다. 반도체와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도 14개월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는 그나마 할 말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와 치솟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라는 불가피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부도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 유럽 국가들을 언급하며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대외 여건이 점차 나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적자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심각함을 더한다.
다음으로 ‘여전히 높은 물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4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4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월 상승률 4.2% 보다 0.5%p 낮아진 수치고 작년 2월(3.7%) 이후 처음으로 3%대 상승률로 둔화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물가 상승률의 둔화는 석유류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에 기인한 것으로 외식 등 개인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다. 실제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한 근원 물가는 4.6% 올라 지난달(4.8%)과 큰 차이가 없다. 또한 국제 원자재 가격과 환율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은 물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불어나는 가계 부채’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가계 신용 누증 리크스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GDP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5.1%에 달한다. 또한 보고서는 “가계 부채 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경우 가계부채 증가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가 상당히 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가계 부채 비율을 80%에 근접할 수 있도록 줄여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어나는 가계 부채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우리 경제에 여전한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국제통화기금(IMF)이 4월 11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WEO)’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1.7%에서 1.5%로 0.2%p 하향조정했다. 국책연구소인 KDI도 1.8%에서 1.5%로 낮춰 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주요 경제 지표가 악화되고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지만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본격화되는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년간 열린 정부 행사나 회의, 간담회의 대통령 연설문 190건을 전수 조사했는데 ‘경제’라는 단어를 언급한 횟수가 총 557회로 가장 많았고, 그밖에 빈도 상위 30위권 단어에 산업(6위)과 기술(9위) 등 경제 관련 단어가 모두 11개나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정부나 대통령실의 경제 대책은 상당히 미흡한 편이다. ‘말로만 경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소한 우리 경제와 수출에 영향력이 큰 중국과 관계 개선의 움직임은 보여주어야 557회나 언급한 ‘경제’의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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