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최근 미국에서 주요한 경제 지표 두 개가 발표됐다. 하나는 지난 10일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로 전년 동월 대비 3.5%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고 전월 상승률 3.2%를 넘었다. 이는 지난해 9월에 기록한 3.7% 상승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또 다른 지표는 미 상무부가 25일 발표한 1분기 GDP 성장률인데 1.6%로 집계되었다. 직전 분기(23년 4분기) 성장률 3.4%에 비해 크게 떨어졌고, 2%대를 예상한 시장 전망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위 두 지표를 합쳐 살펴보면 1분기 GDP 성장률이 크게 떨어진 반면, 3월 물가는 여전히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모습이다. 두 지표가 발표된 직후 일각에서는 오일쇼크로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경기 침체가 이어진 1970년대 초 상황의 재현을 우려하기도 한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미 국채 금리가 치솟고, 뉴욕 증시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시장의 우려에 바로 대응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1분기 GDP 상승률 속보치 발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연방준비제도가 앞으로 몇 달 안에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을 언급했다. 옐런은 인플레이션 수치가 통계적으로는 신기루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주택 임대 시장의 변화가 늦게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택 시장의 안정화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옐런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첫 금리인하 시기 전망을 6월에서 9월로 미루는 등 정부의 발언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금리 선물 시장에 따르면 오는 6월에 금리인하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15.7%로 낮아진 반면, 6월에 금리가 동결될 것이란 전망은 83.6%에 달했다. 9월 금리인하 전망이 45.4%였지만, 동결 전망도 32.3%를 나타내는 등 만만치 않다.
이처럼 시장의 전망은 미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잉글랜드 은행(BOE)에 제출한 경제 리뷰에서 “시간이 갈수록 경제 예측이 어렵고 일련의 대규모 충격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각국의 중앙은행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GDP 성장률마저 대폭 하락하자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 정부가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 안정을 우선 추구하고, 이후 경기를 진작하기 위한 부양책을 시행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한 1980년대 초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2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대폭 올렸다. 이 조치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안정화되었지만 이후 미국 경제는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하지만 당시 폴 볼커 미 연준 의장은 긴축 정책이 단기적으로 투자 억제와 불황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이윤율 상승을 통해 경기가 상승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에 미 연준이 과거 사례와 마찬가지로 금리인하 카드를 버리고 긴축으로 급격하게 돌아서는 매파적 성향을 드러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물론 1분기 GDP 성장률이 1.6%로 대폭 하락했지만, 완전한 스태그플레이션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올해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시장의 바람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금리인하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의사 결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미국의 향후 경제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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