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열전> 박동호와 박두칠의 '욕망의 질주'

드라마 '돌풍'과 '삼식이 삼촌' 두 인물 비교
결핍서 시작된 욕망, 편법도 야합도 OK
세상 불의에는 분노, 자신의 치부는 관대
목숨을 담보로 신념 어린 욕망 향해 질주
박소연 2024-07-23 18:35:22
사진=넷플릭스 ‘돌풍’(왼쪽)과 디즈니+ ‘삼식이 삼촌’ 공개 스틸컷

[편집자 주] 드라마 속 이야기가 나와 우리와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드라마 속 인물의 삶이 공감과 위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드라마 열전’에서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서사와 맞닿아 있는 삶에 대해 귀 기울여 본다.

'돌풍'의 박동호(설경구)는 장엄히 선언한다. "추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는 나를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삼식이 삼촌'의 박두칠(송강호)은 좀 더 세속적이다. "삼시 세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그의 포부다. 시대도 성향도 다르지만 두 인물이 어딘가 닮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이들의 원대한 욕망 때문일까. 혹은 욕망에 이끌려 끝내 파멸로 치닫는 삶의 모양새가 닮은 까닭일까.

그들의 욕망의 시작은 사적인 결핍에서부터였다. 박동호는 뇌물수수의 누명을 쓴 채 세상을 떠난 친구 서기태(박경찬) 의원의 죽음을 겪으며 돌풍을 꿈꾼다. 대통령의 아들이 연루된 사모펀드의 뇌관을 찾다 세상에서 사라진 친구의 죽음이 그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머슴의 직급으로 전쟁의 참사를 겪은 박두칠은 밥 한 끼, 빵 한 조각을 위해 권력자의 총칼이 된다.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가난보다 무서운 건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세파를 헤쳐나가며 자기 사람들의 끼니를 욕망했다. 

하지만 이들의 욕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다. 박동호가 장일준 대통령(김홍파)의 시해를 결심하는 순간, 박두칠이 김산(변요한)을 내세워 쿠데타를 기획하는 순간, 그들의 욕망은 순식간에 나라를 뒤엎을만한 것이 된다. 각자 '죄지은 자가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끼니 걱정 없는 경제 대국'을 꿈꾼 탓이다. 

이쯤이면 이들의 욕망이 여기까지 치닫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 가치관에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들은 왜 욕망을 신념처럼 삼아 내달리는 것일까. 그것도 정치판이라는, 기득권 선점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가치관과 이념마저 헌신짝처럼 바꿔 버릴 수 있는 곳에서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에 따라 스스로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돌풍'의 정수진(김희애)이나 '삼식이 삼촌'의 장두식(유재명) 같은 인물들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기실 그들의 욕망에는 사적인 욕망을 넘어선, 오랜 세월 인고의 단단함으로 담금질된 누군가의 생명과 생존과 꿈이 점철돼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노아의 방주가 되어 부패한 자들을 다 데리고 가겠다는 박동호의 결기가, 끼니 거른 이에게 빵 하나의 온정을 건네는 박두칠의 시선이 단지 '꿈으로 포장된 위선'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목적을 위해 편법도 야합도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욕망이지만 다만 먼저 떠난 친구의 비문을 부끄러움 없이 적어 내려가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배를 곯리지 않는 일을 최우선으로 살아온 인생에 '국민을 포장지로 여기는 허울'은 적어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기시감도 느껴진다. 드라마 속에 그려진 정치인들의 모습이 비단 박제된 역사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내려왔을 정경유착이나 '세상의 불의엔 분노하지만 자신의 불의에는 한없이 관대한 괴물'의 모습은 현실 정치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총선 때면 국민에 대한 헌신을 명분 삼아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들이 결국 정당의 당리당략이나 개인의 사리사욕에 따라 노선을 달리하는 것을 비일비재하게 목격해온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목숨을 담보로 신념 어린 욕망을 향해 끝까지 내달리는 이들의 질주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세상을 만들었나, 세상이 날 만든 거겠지"라며 쓰디쓴 자조를 남겼던 박두칠의 '원대한 계획'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며 세상을 떠난 박동호의 '돌풍'도 내심 이뤄지길 바랐다.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보통의 삶 속에서 마주한 이들의 행보가 알 수 없는 해방감과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이야기는 어느덧 끝났지만 새삼 박두칠과 박동호가 그리려던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어디선가 "사랑과 존경의 의미로 다들 그렇게 불러요"라고 너스레를 떨던 박두칠과 "당신이 만드는 미래가 역사가 되면 안 되니까"라던 박동호의 비장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주조연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와 상황을 잘 함축해 내는 대사들의 여운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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