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반도체 패키징 혁명’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은 미세한 반도체 칩들을 보호하고 연결해 하나의 완전한 부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혁명이란 기존의 단순한 패키징 방식의 개선을 넘어, 반도체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잠재력을 지닌 기술 혁신(첨단 패키징)을 말한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기술의 핵심 동력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관련한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기술이 중요해지면서 반도체 산업의 기존 구도가 급격히 변할 것이라 분석한다. 이전에는 반도체 설계와 제조의 구분이 명확했으나, 첨단 패키징 기술이 시스템 성능의 핵심적인 결정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 가치 사슬에서 후(後)공정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보고서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 앞으로 인공지능(AI)과 고성능 컴퓨팅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이에 따라 반도체 업계의 가치 창출 구조가 재편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에서 단순한 칩 설계나 제조가 아닌, 복잡한 시스템 수준의 칩 솔루션을 통합하고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곳이 성공적인 기업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첨단 패키징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위주로 반도체 산업의 구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반도체 패키징 혁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더 작은 크기’다. 3D 적층 기술로 칩을 수직으로 쌓아 작은 공간에 더 많은 기능을 담아 스마트폰, 노트북 등 휴대용 기기의 소형화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는 ‘더 빠른 속도’다. 팬아웃 기술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AI 연산과 빅데이터 처리에 기여한다. 셋째는 ‘더 높은 성능’이다. 시스템 인 패키지(SiP) 기술은 다양한 기능을 하나로 통합해 자율주행 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 등 복잡한 시스템에 적용되어 더 스마트한 기능을 제공한다.
현재 TSMC와 인텔, NVIDIA 같은 글로벌 빅테크 첨단 패키징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기술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첨단 패키징 기술을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 반도체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인텔은 설계와 제조, 패키징을 모두 통합하는 IDM 2.0 전략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NVIDIA는 다중 칩 패키징(MCM)을 통해 인공지능과 고성능 컴퓨터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칩과 패키징을 통합하는 시스템 수준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 패키징 혁명에서 한국 기업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K-반도체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첨단 패키징 기술이 새로운 핵심 기술로 떠오르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들은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통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전략을 유지해온 한국 기업들이 패키징 기술에 대한 투자와 기술 개발에서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다.
K-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패키징 기술은 글로벌 선두 주자들과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와 경쟁 중이지만, 첨단 패키징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개발과 생산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경우 두 회사는 첨단 패키징 가치 사슬에서 메모리를 공급하는 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 기업들은 첨단 패키징 기술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해 글로벌 경쟁사들과 격차를 줄여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TSMC와 ASML 등과 글로벌 협력을 통해 부족한 부문을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패키징과 후공정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메모리 중심에서 시스템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분야로 전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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