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혁신 시급한 한국의 IT 산업

中 IT산업, 정부 강력한 지원으로 글로벌 기술 우위
韓, 정부·기업 지원·투자 확대로 경쟁력 회복해야 
빅터뉴스 2025-03-24 13:30:41
2000년대 초 한국의 IT 산업이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과 일본의 경쟁 관계가 주목을 받았을 뿐 중국은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한국과 기술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2020년대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일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서 나가고 있다. 올해 열린 바르셀로나 MWC 2025에서 한 IT 전문가는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의 혁신이 눈에 띄는 반면, 삼성전자의 전시관은 서울 강남역 휴대폰 매장과 같은 수준이다”고 평가했다. 이는 혁신에서도 한국이 중국에 밀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중국의 IT 산업이 기술적인 추격을 넘어서 미래 산업의 가늠자가 될 혁신 부문에서도 앞서 나가게 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대규모 투자다. 2015년부터 시작된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중국 정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5G 등 미래 기술에 집중 투자했는데, 국영 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막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기술을 빠르게 실험하고 도입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 IT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빠른 시제품 출시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화웨이와 샤오미는 AI와 스마트폰 기술 혁신을 지속하며 자체 반도체 설계와 AI 칩 개발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화웨이는 5G 네트워크 기술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 바이트댄스는 빅데이터와 AI 기반 플랫폼에서,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핀테크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이들은 스타트업과의 협업 및 M&A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IT 산업이 중국에 비해 혁신에서 뒤처지는 원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보수적인 기업 문화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여전히 경직된 조직 구조와 보수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신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IT 산업에서 이러한 문화는 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정부 지원의 한계이다. 중국과 달리 한국 정부의 IT 산업 지원은 규제 중심적인 성격이 강하다. 스타트업 육성이나 신기술 도입보다는 기존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혁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원호 박사


또한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점도 혁신이 둔화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과거에는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도 새로운 기술을 과감하게 시도하며 혁신을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혁신보다는 개선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일본 기업들이 새로운 도전보다는 기존 시장과 기술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서 혁신을 잃고, 글로벌 경쟁력에서 뒤처지지 시작했던 사례와 비견된다. 한국 역시 일본의 전철을 밞을 위험이 있다.

실제로 혁신의 부족은 IT 산업의 경쟁력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IT 산업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와 같은 전통적인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여전히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핵심 기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세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으나, 시스템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에서는 미국과 대만에 밀리고 있으며, 자체적인 반도체 설계와 제조 기술도 한계에 직면해 있다. 또한 AI·클라우드 등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서 한국은 원천 기술 연구나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IT 산업이 혁신을 되찾기 위해서는 ▲도전적 기업 문화 조성 ▲정부의 전략적 지원 확대 ▲핵심 기술 투자 강화 ▲스타트업과의 협업 활성화가 필요하다. 기업은 창의적인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해 새로운 기술과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정부는 스타트업과 신기술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AI, 클라우드, 반도체 등 미래 핵심 기술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협업을 촉진하여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빠르게 산업화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 IT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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