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제게 새로운 꿈이며 희망입니다”

세계커피대회(WCC) 테이스팅 챔피언 라몽단생씨
“미얀마 상황 안정되면 커피 농사 짓고 후학 양성하고 싶어”
신진호 기자 2025-05-31 16:28:09

5월2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카페 ‘기차가 있는 풍경’에서 열린 세계커피대회 테이스팅 부문 결선에서 라몽단생씨가 커피 잔을 들어 테이스팅을 하고 있다. 단생씨는 테이스팅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커피짓기 부문에서는 입상했다. 

“커피는 저에게 단순한 음료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도구이며 새로운 꿈입니다.”

일상에서 흔해 귀한 줄 모르던 것이 어느새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하는 것이 있다. 7년 전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라몽단생(26)씨에게 그것은 커피다.

단생씨는 커피 벨트에 속하는 북위 25도인 미얀마 북부 미치나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집 주변에 흔한 것이 커피나무라 체리가 익으면 따먹곤했다. 커피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오랜 기간 내전이 이어지면서 좋은 생두가 있어도 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장비나 기술이 없어 미얀마에서 커피는 일상의 문화가 되지는 못했다. 

미얀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단생씨는 2018년 전주비전대 건축학에 입학한 뒤 전주대 경영학에 편입해 졸업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던 단생씨는 지난해 김제시에 있는 ‘카페사이’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게 됐다. ‘커피의 모든 것을 배워 고국이 안정되면 그곳에서 커피 비즈니스를 하자.’

사실 단생씨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미얀마의 정치 상황이 악화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국으로 돌아 간다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고, 생명에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방황하던 시기 그의 삶이 변곡점이 된 것이 커피다. 

카페에서 일하는 한편 커핑(Cupping)과 로스팅(Roasting), 테이스팅(Tasting) 등 다양한 커피 관련 공부를 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단생씨는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2025 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의 부대 행사인 제7회 세계커피대회(WCC) 테이스팅 부문과 커피짓기(브루잉) 부문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 

카페사이 안영서 대표는 트레이너 역할을 자청하며 대회 참가를 독려했다. 우선 테이스팅 부문 준비를 위해 에티오피아 구지 우라가(Guji Uraga) 등 대회 지정 8종 생두를 볶아 산지별 차이점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처음에는 산지별 커피 향미(Flavor)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연습이 거듭되면서 차츰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커피를 구별하게 됐다. 비슷한 뉘앙스의 커피들은 첫 아로마(Aroma)와 에프터테이스트(Aftertaste) 느낌의 미묘한 차이들에 집중했다.

커피짓기 부문 준비는 한국어 구사의 한계로 테이스팅보다 어려웠다. 단생씨는 “대회 규정은 2번의 브루잉을 하면서 향미 차이를 어떻게 명확하게 드러내는지 ‘커피 짓기 디자인’ 설명을 요구하는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쉽게 한국말로 전달되지 못해 제 스스로 답답함을 느꼈다”며 “연습을 하면 할수록 많이 서툴고 어려워 한국어 실력을 더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5월2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카페 ‘기차가 있는 풍경’에서 열린 세계커피대회 커피짓기(브루잉) 결선에서 라몽단생씨가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있다. 단생씨는 이 부문에서는 입상했다.

3개월의 준비 끝에 지난 5월2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카페 ‘기차가 있는 풍경’에서 열린 세계커피대회 결선에서 단생씨는 테이스팅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커피짓기 부문에서는 입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6월 8일 오후 7시 지하철7호선 공릉역 2025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 특설무대에서 진행된다.  

단생씨는 “그동안 커피에 대해 공부하고, 추출하고, 맛보면서 막연하게 꿈꿔오던 일이 저에게 갑작스럽게 일어나 꿈인지 현실인지 묘한 기분이 든다”며 “대회를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터라 이번에는 경험을 쌓고 오겠다라는 마음으로 참여했었는데, 대회 당일 집중을 잘한 덕분인지 테이스팅 부문에서 좋은 성적이 나와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제 단생씨에게 커피는 희망이다. 라몽씨는 “한국 여러 곳에서 하우스 안에서 커피 농사를 짓고 있는데, 전북 지역에는 한 곳도 없어 안 대표와 함께 커피 농사에 도전하고 싶다”며 “더 나아가 미얀마의 정치 상황이 좋아지면 고국으로 돌아가 커피 농사도 짓고, 카페도 운영하면서 바리스타도 많이 양성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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