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뉴스가 소셜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소셜 메트릭스를 활용해 최근 1개월간 '베스트셀러'가 들어가 있는 SNS 버즈를 살핀 결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가 '베스트셀러' 키워드와 가장 연관도가 높은 도서로 나타났다. 또 지난달 7일부터 이달 7일까지 키워드 '박막례'와 '책'이 모두 포함된 버즈는 총 1만1218건 발생했고, 그중 트위터 버즈가 총 1만737건으로 소셜 미디어 중 트위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차트 참조) 이 책은 6월 1주 교보문고 주간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 출판된 지 1주일 만이다.
분석기간=2019년 5월 7일부터 6월 7일까지.분석도구=소셜 메트릭스.상세조건=검색어 '박막례' / 포함어 '책'
버즈량이 한 차례 급상승한 지난달 17일은 이 책의 출판사인 위즈덤하우스가 책 표지 사진을 공개하며 '20일부터 예약 판매 실시'를 알린 날이다. 이날 발생한 트윗 중 리트윗과 '좋아요'가 가장 많았던 한 트윗은 표지 사진과 함께 박 크리에이터와 위즈덤하우스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게시했는데, 이 트윗은 8일까지 총 2344회 리트윗됐고, '좋아요'는 1548회 달렸다.
책 표지 사진에서 박 크리에이터는 검은 머리칼 위에 붉은색 두건을 얇게 두르고 입술에는 붉은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채, 파란색 진(Jean)을 입고 오른팔을 들어 주먹을 안쪽으로 꺾으며 이두근을 한껏 뽐내고 있다. 상의 오른쪽 소매는 어깨까지 걷어부쳐 맨살 근육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두꺼운 금반지, 금팔찌, 금귀걸이는 '이만하면 성공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함축하는 듯하다.
입술은 굳게 다물어 자못 진지해보이는 표정이다. 박 크리에이터의 이런 모습은 그가 평소 만들어내는 유튜브 콘텐츠의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그의 유튜브 영상은 대부분 누구나 쉽게 빠져드는 친근함과 웃음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이 표지 사진에 대한 찬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범접할 수 없는 포스와 강인함이 느껴진다", "책 표지가 너무 강렬해 책을 집어들었다" 등 책 표지가 크게 매력적이었다는 평가다. "할머니의 근육이 너무 멋져 보여요"라는 게시물도 있었다. 70대 여성의 팔근육이 '멋져 보인다'는 평가는 본 기자에겐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여성들이 찬사를 보내는 이 표지 사진은 사실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한 그림을 차용한 것이다. '리벳공 로지'는 1980년대 이후 '여성의 힘' 내지는 '여성의 독립'을 이미지화할 때 단골로 사용되는 문화적 상징이다. 원래 이 이미지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규모가 점점 확대되면서 산업현장에서 일할 남성인력이 부족해지자 여성들의 육체노동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애국주의 코드를 가지고 있던 이 이미지는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들어 페미니즘이 재발견해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을 뜻하는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바꿔냈다.
박 크리에이터의 에세이는 '인간 박막례'의 역경과 성공을 모두 담고 있다. 위즈덤하우스는 이 책을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이름도 '막례'가 되어 살아온 지난 70여 년의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인생 전반전" 그리고 "유튜버로 전직하고 난 뒤 유튜브 CEO, 구글 CEO를 만나기까지 부침개 뒤집듯 뒤집힌 (인생 후반전)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며 "말도 안 되게 신나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다가 말도 안 되게 신나게 뒤집힌" 이 스토리에서 출판사는 여성의 힘과 여성의 독립과 권리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70대 나이가 돼서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할머니를 닮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들의 '순수한' 마음을 읽어낸 것일까. 또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에게 "대세는 페미니즘"이라고 재차 확인시켜 주는 차원이었을까. 출판사는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오다가 늙어서 가족의 힘을 빌려 전 세계적 스타가 된 할머니의 인생에 '리벳공 로지'의 코드를 씌웠다.
최근 베스트셀러 도서 '82년생 김지영', 영화 '미쓰백'에 대한 관심 등 문화 부문에선 페미니즘 코드의 영향력이 입증된 바 있다. 페미니즘 열풍은 속옷과 의류 등 소비재 시장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여성 중 4~5명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한다. 한마디로 "페미니즘이 팔린다"는 얘기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 책의 구매자의 87.5%가 여성이었고, 그중 76.2%가 20대와 30대였다. 트위터에서 이 책을 언급하며 박 크리에이터에 대한 동경을 표출한 트위터리안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고 있었다. 책 표지에 페미니즘 코드를 입히며 박 크리에이터에게 '페미니즘 전사' 이미지를 덧씌운 출판사의 마케팅은 일견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20~3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 코드를 발견하고 이 책을 읽었다면 과연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박 크리에이터의 에세이 출간 소식을 다룬 한 기사에는 '다행히'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보다 백번 낫더라". 이 글은 공감이 112회 달렸다. 또 한 댓글은 "그동안 온갖 포장꾼들이 삶을 포장하는 자기계발에 피로감을 느꼈었다"라며 "당신의 인생은 정말 비참했지만 가족 만큼은 안 버리고 당당하게 일했다는 그 한 마디가 큰 울림이었다"라고 했다. 이들은 이 책이 주는 진짜 강렬한 메시지 즉 "그러니까 너희도 열심히 살아봐", "희망을 버리지 말라"와 같은 저자의 절절한 메시지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듯했다. 만일 박막례씨의 70년 인생이 일부 2030 여성들에게 오로지 젠더의 프레임으로 읽히는 데서 끝난다면? 아무리 책이 많이 팔린다 해도 박씨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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