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들이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원자재가격 급등에 수출에 필요한 해운 운임은 고공행진이다. 특히 원자재 대기업은 협상없이 가격 상승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제품을 납품받는 원청에선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연말엔 자금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준금리인상까지 예고되면서 중소기업들의 생존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 9월 인도분은 배럴당 1.43달러(2.09%) 내린 66.8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대유행에 대한 우려로 하락했지만 여전이 연초 대비 50% 가량 상승한 수준이다. 리튬, 구리, 철광석 등 기업이 제품 원재료로 사용하는 원자재 가격도 올 들어 상승세를 지속했다.
기업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특히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제대로 반영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더욱 나쁘다. 실제 이날 발표된 중소기업중앙회 '원자재 가격 변동 및 수급 불안정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89.9%가 지난해 말 대비 주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고 밝혔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분만큼 납품 단가에 반영한다는 경우는 43.2% 전부 반영은 13.8%에 그쳤다.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43.0%였다. 절반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원자재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조사대상 500곳중 61.8%는 원자재 가격 변동 시 구매 가격에 대해 협의 없이 공급처가 일방적으로 통보한다고 답했다. 구두 협의는 21.0%, 계약서 작성은 16.6%에 그쳤다.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기업이 특별한 협상없이 중소기업에 일방적으로 가격인상을 통보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공급처의 원자재 가격 변동 주기는 '수시'가 76.2%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1년 단위(16.8%), 분기 단위(3.6%), 반기 단위(3.4%) 등의 순이었다.
반대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은 쉽지 않다. 구리를 주력 원자재로 사용하는 한 중소기업의 임원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가도 올려야 하지만 원청에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다른 곳에선 이런 상황에도 오히려 납품단가를 더 낮춰주길 원하는 곳도 있어 우린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당장 납품물량이 줄까 원청의 눈치를 봐야하는 판국에 원자재 가격 상승을 납품단가에 반영해달라고 하는 요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중소기업들은 납품대금 현실화를 위해 원가연동제,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활성화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상 운임 고공행진도 중기를 옥죄는 요인중 하나다. 한국관세물류협회 자료에 따르면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지난 6일 4225.86을 기록했다. 2009년 10월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로, 지난해 같은 날과 비교하면 4배에 가까운 수치다. 특히 국내 수출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럽과 미주 노선 운임이 크게 올랐다. 그만큼 중소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열심히 팔아도 정말로 남는게 없다는 중소기업들의 하소연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리인상도 부담요인중 하나다. 한국은행이 예고대로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중소기업들의 대출 금리 인상이나 상환 요구 등 자금 사정은 더욱 빠듯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이런 현상은 강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중소기업 500곳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반기 은행에서 자금 조달 시 겪은 애로사항으로 대출 금리 인상 24.2%, 대출금 일부 상환 요구(12.6%), 높은 수수료 부담(12.4%) 등이 꼽혔다.
이에따라 중소기업의 경기 전망도 악화하고 있다. ‘8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는 전월 78.9보다 5.3p(포인트) 하락한 73.6을 기록하면서 3개월 연속 떨어졌다.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자재 문제에 환율까지 오르면서 수익성이 정말 안좋아지고 있고 여기에 최저임금 부담까지 더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경기가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지는 중소기업들이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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