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등 일탈행위나 편법승계 의혹으로 비판받았던 재벌 3~4세들이 충분한 자숙기간 없이 초고속으로 승진하거나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 기준의 변화로 재계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강해지고 있지만 유독 오너일가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부터 주창했던 재벌개혁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정권교체기에 돌입하면서 재벌기업들이 더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민단체들은 "근본적으로 재벌가의 제왕적 족벌경영과 기업세습 등 이른 바 '기업 사유화'의 구태를 해결하지 않고 'ESG'만 외쳐봐야 여론 희석용이나 마케팅 도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벗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오너일가가 ESG 경영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곳중 하나는 CJ그룹이다. 이재현 CJ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은 이달 1일자로 임원(경영리더)로 승진했다. 이 리더는 1990년생 30대 초반의 나이로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초고속 승진이다. 특히 이 리더는 지난 2019년 9월 액상 대마(마약류) 흡연과 국내 밀반입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난 지 불과 1년여 만에 슬그머니 현업에 복직했다. 마약 전과를 떠나 집행유예 기간이 한참 남은 상황에서 업무 복귀와 임원 승진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판여론은 강하다. 그는 CJ신형우선주 지분을 늘리면서 기업세습을 위한 포석도 강화하고 있다.
그의 부친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G(거버넌스)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과거 횡령탈세 재판서 건강상의 이유로 “살려달라'고 하소연 했던 그는 2016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 현재 한해 124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을 정도로 왕성한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을 진두지휘하면서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조그룹도 도마에 올랐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의 장남 주지홍 부사장은 최근 정기인사에서 식품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편법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의심을 받고 있다. 2015년 하반기부터 주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사조시스템즈가 그룹의 핵심 계열사 사조산업 지분을 23.75%까지 사들이면서 상속세를 내지 않고 그룹 계열사 지배력을 확보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욱이 사조시스템즈는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로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주 부회장의 개인회사 격인 캐슬렉스제주와 사조산업 소유(지분 79.5% 소유) 캐슬렉스서울의 합병 추진 과정에선 배임 의혹도 제기됐다.
이 밖에도 다수의 기업에서 비슷한 논란이 일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이들 기업들이 하나같이 'ESG 경영 실천'을 적극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ESG는 코로나19 팬데믹이후 세계 경제 불확실성과 글로벌 친환경 규제 강화 속에 기업 투자를 결정짓는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떠올랐다. 이에따라 국내 기업들도 경영 키워드로 ESG를 강조하면서 관련 활동을 적극 홍보해왔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코스피 상장사 82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10월 기준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설치한 기업은 123개에 달한다. 이처럼 기업과 직원들에게 ESG를 강조하면서 정작 오너일가는 정반대의 길로 가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경제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존 사회공헌활동을 ESG 경영으로 포장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ESG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잣대를 만들어 기업들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고, 주요 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 역시 이에대한 견제를 더욱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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