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② 레드와인의 세계로 이끈 케냐 기차싸이니

코로나19로 후각과 미각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커피 테이스팅
정신 집중하니 인도 몬순 말라바, 콜롬비아 라 루이사 향미도 느껴
신진호 기자 2022-03-21 23:18:05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택격리에서 벗어난 지 만 하루 만에 커피 테이스팅을 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미각과 후각이 80%이상 상실됐는데 테이스팅이 제대로 될까?’라는 의구심이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미각과 후각 상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커피 로스팅 냄새도, 맵고 강한 냄새가 퍼지는 신라면을 끓였을 때도 무슨 냄새가 나는지도 몰랐다. 냄새는 음식을 가까이 코에 댔을 때 정신을 집중해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니 커피 테이스팅은 무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염려를 뒤로하고 지난 19일 테이스팅에 임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그냥 즐기자라는 심정으로.

커피 테이스팅할 때 후각과 미각의 최대치를 끌어올리게 된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19로 후각과 미각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정신을 집중하면 얼마든지 테이스팅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진=커피비평가협회 제공 

첫 번째 커피를 핸드밀로 갈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빵을 굽는 토스트향이 묻어났다. 그런데 알 수 없는 향기가 강했다. ‘이건 뭐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로마에서 아몬드와 허니(꿀)의 느낌이 감지됐다. 핸드드립한 뒤 마셨을 때는 신맛보다는 단맛이 강했고 약간의 쓴맛을 느꼈다. 

테이스팅지에 다음과 같이 점수를 매겼다.  Aroma 6, Floral 6, Fruit 6, Sour 4, Nutty  6, Toast 6, Acidity 6, Body 6, Flavor 6, Sweetness 5, Balance 6. 

커피를 마시고 난 뒤 떠오르는 3가지는 Bread(빵), 아몬드, 현미라고 적었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떠오르는 색상은 Yellow(노란색)라고 적고, ‘이 커피를 마시면서 추억 속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지’ 라고 묻는 항에는 ‘현미밥을 먹고 난 뒤의 구수함’이라고 기록했다.

두 번째 커피도 오묘했다. 커피 가루에서 발사믹(포도식초)과 토스트, 복숭아 향이 묻어났다. 커피를 마시니 새콤달콤하면서 초콜릿 맛까지 느껴졌다. 

테이스팅 점수는 Aroma 8, Floral 7, Fruit 8, Sour 5, Nutty 7, Toast 8, Acidity 8, Body 7, Flavor 7, Sweetness 6, Balance 7로 기록했다.

총평 3가지는 Grapefruit(자몽) Winey Bread, 떠오르는 색깔은 자몽의 자주색이라 기록하고, 추억은 ‘황혼녘 레드 와인을 마시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세 번째 테이스팅 커피는 약간 싱겁게 느껴졌다. 아마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커피의 강한 맛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커피를 음미했다. 커피가루에서 발사믹과 토스트를 느꼈고, 커피를 마시자 오렌지와 딸기의 새콤달콤함이 묻어났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여운에서 단맛보다 경쾌한 신맛을 많이 느꼈다. 

테이스팅 점수는 다음과 같다. Aroma 5, Floral 5, Fruit 6, Sour 3, Nutty  4, Toast 5, Acidity 6, Body 5, Flavor 6, Sweetness 5, Balance 6. 

총평 3가지는 오렌지 딸기 빵, 떠오르는 색깔은 노란색, 떠오르는 추억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모습’이라고 각각 적었다.

테이스팅이 끝나고 커피 목록을 살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미각과 후각 상실을 염려한 것과 달리 거의 전문가 평가와 비슷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커피는 계절풍인 몬순으로 숙성시켜 단맛이 풍부한 ‘인도 몬순 말라바(India Monson Malabar)’, 두 번째 커피는 자몽과 보르도 와인 향미가 나며 산미가 풍부하고 과일주스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케냐 니에리 기차싸이니(Kenya Nyeri Gichathaini)', 마지막 커피는 산미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면서도 딸기사탕처럼 화사하고, 후미에서는 견과류의 향미가 좋은 ’콜롬비아 라 루이사 무산소 발효(Columbia La Luisa Anaerobic Fermentation)'.

계절풍인 몬순으로 숙성시켜 단맛이 풍부한 ‘인도 몬순 말라바(India Monson Malabar)’, 자몽과 보르도 와인 향미가 나는 ‘케냐 니에리 기차싸이니(Kenya Nyeri Gichathaini)', 산미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면서도 딸기사탕처럼 화사한 ’콜롬비아 라 루이사 무산소 발효(Columbia La Luisa Anaerobic Fermentation)'. 사진=커피비평가협회 제공

 

21일 똑같은 커피를 가지고 2차 테이스팅을 했다. 이들 커피는 지난 17일 로스팅해서 이날 더욱 안정화됐기 때문에 1차와 어떤 맛의 차이가 있는지 비교하기 위해서다.

인도 몬순 말라바의 아로마는 Nutty(almond), Spices(Clove), Jasmine으로 기록했다. 1차 테이스팅할 때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기를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을 보고 정향(Clove)이라고 정했다. 사전에서 보니 정향은 향기가 맵고 강력해 방향제로 사용되며 강력한 항산화제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 커피를 테이스팅하면서 플레이버 휠에 왜 Spices(향신료)가 들어 있는지 배우게 됐다. 커피를 마신 뒤 떠오르는 생각을 ‘로스팅 원두 냄새를 맡으면 강렬한 Spices와 Jasmine 향이 퍼지면서, 동남아나 인도행 티켓을 거머쥔 듯한 느낌이 묻어 남’이라고 조금 세밀히 적었다.

케냐 기차싸이니는 1차와 2차 테이스팅에서 별 차이가 없어 테이스팅 점수나 느낌을 거의 고치지 않았다.

마지막 콜롬비아 라 루이사는 1차 때보다 단맛을 많이 느껴 부분 수정했다. 총괄적으로 3가지 떠오르는 것(overall)을 Pineapple Strawberry Almond, 떠오르는 회상은 ‘늦은 아침에 일어나 모닝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은 뒤 새콤달콤한 파인애플을 먹고 난 뒤의 행복감’이라고 각각 적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봤다. 첫 번째는 정답을 알았기 때문에 몸이 배운대로 반응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미각과 후각이 1차 테이스팅과 차이가 없었는데 2차 테이스팅이 좀더 세밀해진 것은 아마도 시간차를 두고 커피를 마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차 때는 커피 테이스팅에 열중하느라 3가지 커피를 바로바로 마셨기에 마지막 세 번째 커피가 상대적으로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2차 때는 1시간 이상을 두고 커피를 마셔 음미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풍부했기 때문이란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다.

커피 테이스팅을 할때는 미각과 후각의 최대치를 끌어올리게 된다. 정신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각과 후각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커피 테이스팅을 마치면서 정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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