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고향 카메룬, 그곳에서 커피는 희망이면서 절망이다.
2700만년전 치자나무(꼭두서니과)에서 갈라져 나온 ‘커피나무 시조(始祖)’는 1400만년전 카메룬 일대에서 군락지를 형성했다. 200만년전까지 활발한 지각운동으로 아프리카 동쪽에 ‘동아프리카 지구대(East Africa Rift Valley)’가 형성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할아버지 커피나무'는 아프리카 중부와 서부쪽으로 퍼져나갔다. 할아버지 커피나무는 각 지역에 적응하면서 '커피의 아버지'인 카네포라(Canephora) 종과 '커피의 어머니'인 유게니오이데스(Eugenioides) 종으로 거듭났고, 이들 종은 콩고 지역에서 배수화(Polyploidization)로 자식인 아라비카(Arabica) 종을 낳았다. 아라비카는 100만년전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깊게 뿌리를 내리며 집단 서식지를 형성했다.
커피는 17세기 이후 예맨과 인도네시아, 기아나, 브라질 등지로 퍼지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기호식품으로 성장했다. 19세기 카메룬을 지배한 독일 정착민들은 커피를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수천만년을 떠돌다 커피가 다시 고향땅을 밟게 된 것이다. 여러 품종 가운데 유럽인들이 사랑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Blue Mountain)도 카메룬에 1927년 이식됐다. 당시 커피는 카메룬의 ‘희망’이었다. 커피 생산량이 한때 아프리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았고,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됐다.
하지만 카메룬에서 커피 재배는 순조롭지 못했다. 정부와 커피조합의 무능과 부패, 1990년 국가 농업부문 자유화 조치 등이 이어지면서 농민들은 커피 나무를 베어내고 얌과 카사바, 옥수수 등 식용작물을 심기에 이르렀다. 특히 2016년 영어권 지역에서 프랑스어 우대 정책에 반발하면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번지면서 커피는 직격탄을 맞았다. 아라비카종이 재배되는 지역은 카메룬 북쪽에 위치한 영어권과 일치하는데, 내전으로 농민들이 커피 반출이 막히자 식용작물 생산을 가속화한 탓이다. 실제로 ICO(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 통계를 보면 카메룬의 아라비카 커피 생산량은 1990년 6만5000t에서 2017년 2만2200t, 2020년 1만6800t으로 줄었다. 그러니 카메룬에서 커피는 ‘절망’이다.
그렇지만 ‘카메룬 통일의 건축가’로 불리는 존 응구 폰차(John Ngu Foncha)의 장남인 마티 폰차(Matti Foncha)의 노력으로 커피는 다시 카메룬의 희망이 되고 있다. 폰차는 카메룬 북쪽 보요 지역(Boyo Division)에 ‘힐탑 농부직거래(Hilltop Farmers Direct) 조합’을 세우고 농민들이 텃밭에서 생산하고 있는 ‘가든 커피(Garden Coffee)’를 직거래를 통해 모아 판매와 수출을 하고 있다. 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가 운영하는 작은농부커피 카페는 2000년 중반부터 카메룬 힐탈 농부직거래 조합과 직거래를 통한 공정무역을 하고 있다.
보요 지역 해발 1700m 오쿠톨론 마을(Oku-Tolon Village)에서 자란 카메룬 블루마운틴 내추럴(Natural) 생두의 생김새는 일반 커피와 조금 다르다. 보통 아라비카 생두 모양은 미끈한 타원형인데, 카메룬 블루마운틴은 길쭉한 모양이 섞여 있다. 커피비평가협회 박영순 회장은 “카메룬 커피는 길쭉한 모양의 롱베리(Long Berry)가 섞여 있는데, 이는 치자나무에서 갈라져 나온 커피 원종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카메룬 블루마운틴을 로스팅한 뒤 분쇄하자 견과류(Nutty)와 자스민(Jasmine), 향신료(Spices) 등 향긋한 아로마가 피어 올랐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테이스팅을 하니 가스가 충분히 빠지지 않아 시트러스(Citrus·감귤류) 산미가 도드라졌다. 그러나 불쾌하기보다는 입안이 상쾌했다.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자 초콜릿(Chocolate)을 먹는 것처럼 진하게 느껴졌다.
커피 테이스팅은 그 뒤 3차례 더 이어졌다. 커피가 안정화되면서 초콜릿과 체리(Cherry), 자몽(Grapefruit)이 연상됐고, 식으니 체리 또는 자두 잼을 먹는 것(Jam-Like)처럼 단맛도 느껴졌다.
테이스팅 점수는 다음과 같다.
Aroma 8, Floral 7, Fruit 7, Sour 1, Nutty 8, Toast 7, Burnt 1, Earth 1, Acidity 7, Body 8, Texture 8, Flavor 9, Aftertasting 8,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8, Sweetness 8, Bitterness 1, Balance 8, Defect None(없음).
커피를 마시면서 카메룬 농민들의 고단한 삶이 투영됐는지, 힘든 일로 지친 몸이 한 잔의 커피로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연상된 색깔은 다양한 느낌이 나는 보라(Purple).
카메룬의 내전이 하루빨리 종식되고, 커피 농민들의 고단한 삶이 희망찬 내일로 바뀌길 소망했다. 그러니 카메룬의 커피는 희망이 되어야 한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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