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팅을 하기 위해 커피 포대를 열자 과일향(Fruity)과 꽃향(Floral)이 피어올랐다. 가공방법이 워시드(washed)나 내추럴(natural)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두의 아로마를 계속 맡자 와인에서 풍기는 발효향도 느껴졌다.
이번에 테이스팅하는 커피는 시드라(Sidra) 레드 워시드(red washed)다. 시드라는 바리스타 대회와 인연이 깊다. 실제로 2019년 전주연과 안토니 더글라스(Anthony Douglas)가 시드라를 사용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시드라의 품종은 아직도 논란거리다. 중남미에서 많이 재배하는 시드라는 레드 버번(Red Bourbon)과 티피카(Typica)를 교배해 만든 하이브리드로, 습한 에콰도르 기후에 잘 적응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농가에서 유전자 검사를 위해 제출한 샘플에서는 에티오피아 재래종(Heirloom)과 유전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시드라 레드 워시드를 마시면서 이처럼 다양한 향미가 난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인공적인 풍미를 띤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래서 시드라 레드 워시드는 ‘양가적(ambivalent)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떠오르는 색깔은 보라색(Purple).
시드라 레드 워시드의 산지 정보를 살펴봤다. 농장은 에콰도르 로하(Loja) 소조랑가(Sozoranga)에 있는데, 자매인 다이애나 벨레즈(Diana Velez)와 올린카 벨레즈(Olinka Velez)가 2000년부터 5ha(1만5000평)를 관리하고 있다. 언니 다이애나의 농장은 ‘황금의 땅’을 뜻하는 얌바미네(Yambamine), 동생 올린카의 농장은 초로라(Chorora·우물)다. 벨레즈 자매의 커피는 2019년 에콰도르 커피 골든컵(Taza Dorada) 대회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해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올린카는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조인식에 참석할 정도로 커피 업계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얌바미네&초로라 농장은 지난 11월8일부터 11일 코엑스에서 열린 카페쇼서울(CAFE SHOW SEOUL 2023)에 참석해 에콰도르 커피를 소개하기도 했다.
초로라 농장에서 생산한 시드라 레드 워시드는 두번의 무산소 발효(Double Anaerobic)를 거칠 정도로 가공 방법이 까다롭다. 먼저 잘 익은 커피 체리를 손으로 선별해 당 함량을 평균 20브릭스(Brix)에 맞춘 뒤 발효통에 넣고 이산화탄소(Co₂)를 주입해 22도 이하에서 120시간 발효시킨다.
2단계에서는 첫 번째 발효를 거친 체리의 껍질을 벗겨 점액질(mucilage) 상태에서 유산균(lactic bacteria)을 넣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120시간을 더 발효시킨다.
pH4에 도달하면 햇빛에서 이틀간 말린 뒤 비닐하우스에서 습도가 11% 될 때까지 25일 동안 천천히 건조한다.
이처럼 시드라 레드 워시드는 가공에 품이 많이 드니 가격이 일반 생두의 3~4배에 이를 정도로 비싸다. 그럼에도 새로운 향미를 즐기려는 커피 애호가들이 늘면서 가격이 오름세다.
커피비평가협회 박영순 회장은 “고급 커피 시장을 두고 재배국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독특한 재배종 육성과 차별적인 가공법 개발 부문에서 놀라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스페인어로 시원한 맛의 사과 발효 음료인 ‘사이다’를 뜻하는 시드라는 에콰도르 스페셜티 커피를 상징하는 품종으로 세계 커피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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