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결국 헌정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고 헌정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매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은 촛불을 든 시민들로 넘쳐났고 각 언론들은 최순실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국정농단 보도 중에는 최순실 자매가 상가임대차법을 악용해 세입자에게 갑질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입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가임대차법의 헛점을 악용해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수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들여 장사를 시작했다가 접은 피해자들이 한 둘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갑질이 가능한 이유는 전대미문의 악법조항인 환산보증금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통상 건물주는 세입자를 내쫓을때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는 방법을 동원한다. 상가임대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세입자는 수억원의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를 비워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상가가 공실이 되면 또 다른 세입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바닥권리금(건물주가 세입자로부터 받는 권리금)을 챙긴다. 그리고 또 임대차계약이 만료되면 임대료를 대폭 인상해 세입자를 쫓아낸다. 건물주는 매월 발생하는 임대료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의 바닥권리금을 챙긴다. 환산보증금 규정을 악질적으로 이용하는 이런 사례들은 소위 말하는 황금상권내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난달 20일 계약갱신청구권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차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2001년말 제정된 이래 10여 차례의 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상가임대차법은 제정 당시나 며칠 전 개정안이 통과된 오늘날에나 여전히 세입자를 보호하는 데에는 미흡하기만 하다. 상가임대차법을 악법으로 만들고 있는 ‘환산보증금’규정 때문이다.
환산보증금은 ‘보증금+(월세×100)’으로 계산을 하며 일정액(서울특별시는 6억 1000만원,수도권과밀억제권역은 5억원, 광역시 2억 4000만원, 그 밖의 지역 1억 8000만원)이상이면 상가임대차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가 된다.
상가임대차법을 제정할 당시 환산보증금이 일정액 이상이면 부자에 속하는 세입자이므로 굳이 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법무부의 주장이 관철돼 탄생한 법규정이다. 지난달 20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논리에 의해 환산보증금 규정은 폐지되지 않았다.
환산보증금 규정은 상가임대차법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사안이다. 보호가 필요한 세입자의 범위에 따라 상가임대차법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 제정 당시 법무부의 주장처럼 부자인 세입자까지 굳이 보호할 필요가 있냐는 논리를 따르자면 상가임대차법은 서민전용(?)법안에 그치고 만다.
상가임대차법의 미비로 피해를 입는 세입자들은 황금상권내에 있는 세입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환산보증금이라는 전대미문의 규정으로 인해 상가임대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밥술깨나 뜨고 사는 부자세입자라는 까닭이다.
상가임대차법의 개정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임대료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환산보증금의 범위를 넘어서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좋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기불황으로 공실이 많기 때문에 임대료 급등은 없을 것이라는 일부 시각도 존재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안이한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상가건물의 가치는 임대료에 비례한다. 건물주들이 상가점포를 공실로 비워놓더라도 임대료를 인하하지 않는 이유이다. 임대료는 기껏해야 몇 백만원이지만 건물가치는 최소 몇 억원에 달한다. 월세 몇 달 더 받자고 임대료를 인하하면 건물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공실로 비워놓더라도 임대료를 인하하지 않는 것은 건물주들의 인지상정이다.
상가임대차법의 미비로 피해를 입는 자영업자들은 전체 자영업자들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가임대차법을 마련한 것은 자영업자들이 장사로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함이다. 자영업으로 성공해 부자세입자가 되는 꿈을 꾸지 말라고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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