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소 선도국가 비전’을 내놓으면서 수소경제 활성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다.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후 수소사회로 진입을 위한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먼저 수소경제 육성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인 수소법(2021년 2월 5일 시행)이 세계 최초로 제정되었다. 또한 수소차와 충전소, R&D 등 수소관련 6대 정책 분야를 마련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수소수경제위원회를 출범 시켰다.
약 2년 반의 기간 동안 부지런히 달려온 결과물도 나름 괜찮다. 산업부 발표에 따르면 수소차와 수소충전소, 연료전지 보급에 있어서 2년 연속 세계 3관왕을 기록했다. 특히 설치에 문제가 많았던 수소충전소의 경우 2018년 14기에서 2021년 112기로 700%나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경쟁국인 일본 69%, 독일 56% 증가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수소 승용차뿐만 아니라 트램과 트럭, 지게차 등이 실제로 운영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번에 발표된 수소 선도국가 비전은 그동안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수소산업 생태계 조성 계획, 연구개발(R&D)과 금융·세제 지원, 인재 개발 계획까지 전방위적인 정책을 담고 있다. 또한 발표된 비전은 단순한 수소경제 활성화를 통해 수소사회를 앞당기겠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선도국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글로벌 수소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쥐어 미래의 에너지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산업계서도 정부의 수소 정책에 발맞추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수소자동차 개발의 선두주자인 현대차 그룹은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를 통해 차세대 수소연료 전지 사업에 뛰어 들고 있다. 에너지 기업인 SK E&S도 국내에 수소 생태계 구축에 18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과 롯데, GS, 포스코 등의 기업들도 해외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국내에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력 있는 대기업들이 속속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정부가 추진하는 계획에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의 수소 선도국가 비전 발표에 아쉬운 점도 있다.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의 참여 및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언급된 기업은 현대와 삼성, SK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들이다. 정부는 2030년 글로벌 수소기업 30개를 육성하겠다는데 그 안에 중소·벤처기업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현실이 미래를 준비하는 수소경제 활성화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울산에 소재한 수소 생산 중소기업인 ㈜덕양 공장을 방문하고 ‘수소 전도사’임을 자처했다. 상징적이지만 수소경제와 관련해서 중소기업의 역할에 기대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2년여 지난 지금 수소사회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에는 대기업들만 참여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말았다. 대·중소기업 협력이라는 말은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돌고 돌아 다시 대기업으로 귀결되는 이른바 ‘Old boy’의 귀환이 씁쓸하다.
물론 초기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수소경제 생태계 구축에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소 자동차 부품 제조 및 수소 에너지 저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우리 중소기업들도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생태계 구축 과정에서 혁신적인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테이터연구소 소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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