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초에는 미국의 라스베가스에서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인 CES가 열린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으로 개최한 후 2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를 재개했다. 오미크론 확산에 따라 참가 업체가 예년의 절반에 불과하고 행사 기간도 4일에서 3일로 단축되었지만 내용면에는 수많은 혁신이 소개되는 자리가 되었다.
올해 CES의 특징은 ‘탈경계 및 융합의 가속화’라 정리할 수 있다. 전기 자동차와 자율주행차 보급이 진행되면서 자동차업체가 CES에 참가하고 IT·전자업체들이 글로벌 자동차 전시회에 부스를 여는 탈경계 현상은 지난 몇 년간 이어졌던 풍경이다. 그럼에도 굳이 탈경계와 융합을 화두로 꺼내는 이유는 전자·IT를 주제로 하는 전시회에서 전기차 및 모빌리티 관련 이슈가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CES의 기조연설은 IT 산업의 최신 정보와 미래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발표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됐다. 2008년 릭 왜고너(Rick Wagoner) 전 GM 회장이 자동차 업계 인사로는 최초로 CES 기조연설을 맡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IT와 자동차의 융합을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업계의 메리 바라(Mary Barra) GM 회장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기조연설을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자동차 산업이 IT 분야에 깊숙이 들어왔고, 또한 앞으로 IT 산업에서 미래형 자동차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CES 2022에서는 IT와 자동차의 융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때 세계 IT시장의 선두주자였고 일본을 대표하는 IT 기업인 소니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다는 소식을 CES를 통해 발표한 것이다.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 소니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올봄에 ‘소니 모빌리티’를 설립하고 판매 목적의 전기차를 생산할 것이라 말했다.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은 CES 2022의 가장 큰 뉴스가 되었다.
소니가 2020년 CES에서 완성형 전기차인 ‘비전S’를 공개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를 자동차용 센서 기술을 홍보하기 위한 시험용 차량이라면서 전기차 시장 진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보용 콘셉트카라 하기에는 완성도가 너무 높아 당시 소니의 부인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에 소니가 전기차 시장 진출을 발표한 것은 CES 최대의 뉴스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은 IT와 자동차 산업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다. 클로벌 빅테크 기업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것은 소니가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애플, LG전자, 샤오미 등이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제작은 기존의 자동차업체 혹은 자동차 부품업체들과 협업 단계에 머물러있다. 반면 소니는 오늘 당장 출시해도 될 정도의 완성형 전기차를 자체 제작한 상태에서 출발해 무게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지금까지 IT 산업과 자동차 산업의 융합은 전기차 제작은 자동차업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IT 업체들은 전기차를 포함한 미래형 자동차에 들어갈 자율주행 시스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은 IT업체가 차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부문을 자체 제작하고, 발표 장소도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인 CSE로 정했다는 점에서 ‘탈경계 및 융합의 가속화’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CES에 수많은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참가해 자동차 산업의 미래와 모빌리티 서비스를 선보여 왔지만 주류로 합류하지는 못하고 특별 참가자라는 성격이 강했다. 즉, 자동차도 첨단 IT 산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소니 선언 이후 CES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관련 이슈가 선점하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IT업체들이 CES를 통해 첨단 제품을 선보여 왔듯이, 앞으로는 CES가 전기차 신 모델을 발표하는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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