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만큼 논란이 많은 법률도 없을 것이다. 법 시행 16일을 앞두고 터진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강화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건설업체들은 '처벌1호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받지 않기 위해 공사장을 멈추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법 시행 이틀 후인 지난달 29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토사 붕괴사고로 3명이 매몰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게 되면 경영 책임자에게 처벌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중대재해를 안전 관리 주체인 기업의 범죄로 보고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여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처벌 대상과 적용 범위가 모호한 상황에서 법이 시행되면서 기업경영이 무력화되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이같은 우려는 무엇보다도 안전 기준에 대한 규정이 매우 불명확하다는데 있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과 고용노동부 해설서에는 기업이 어느 정도로 안전 조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지 정확한 기준이 없다.
규정이 미미한 상황에서 광범위한 중대재해의 책임을 사업주나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특히 대기업보다 산업안전 인력과 투자에 한계가 있는 중견·중소기업들은 처벌 위험에 상시 노출될 우려와 부담감을 떨칠 수 없다.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기업들은 골병이 들 수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자는 안전·생명 중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공사장에서는 60세 이상 고령 인력 채용을 중단했다. 이미 물꼬가 터진 현장 자동화·무인화 추세가 더욱 빨라 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8~2019년 연이어 현장 인명사고를 겪은 한화는 이후 대전사업장에 대해 대대적으로 원격·무인·자동화 전환 투자를 했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이후 사고 사례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현장자동화·무인화는 업종에 따라 한계가 분명히 있다. 많은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결국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또한 근로자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무인화의 길을 걸을 것이다. 중대재해법 시행이 산업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의 경우 수많은 논의와 분석, 평가를 거쳐 법 제정까지 13년이 걸렸다. 산재 사망사고에 한해 법인에 대해 벌금형만 도입했다.
명확한 의무 기준의 부재는 실효적 안전 조치 확보를 불가하게 만든다. 실효적인 재해 예방을 위해 포괄적 규정보다 세부적인 기준을 명시한 규정이 필요하다. 또한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 조항 신설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보수 중견기업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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