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하게 풀어 논 돈을 어떻게 회수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의 엄청난 유동성을 회수한다는 방향이 정해졌지만 문제는 물가인상에 이은 인플레이션, 더 나아가 스태크플래이션 우려를 어떻게 해결할지 관건이 됐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지구촌의 신음이 커지고 있다. 페루와 스리랑카 등 일부 국가에서는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질 정도다. 물가 상승 원인이 비용 상승 하나 때문이 아니고 글로벌 경제 자체가 물가 상승 압박을 심화시키고 있어 심각성이 크다.
각국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예상보다 빠른 속도를 내고,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고유가 상태가 지속하면 그 충격은 더 커질 전망이다.
실제로 달러 발권국(發券國)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돈을 마구 뿌려댔던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한 고강도 긴축을 예고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 7.9%로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연준의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 4.3%를 2배 가까이 뛰어넘으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도 지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년여 만에 4%대로 치솟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회복 과정에서 수요 측면의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물가 오름세는 더 가팔라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3%대로 올라선 뒤 11월(3.8%), 12월(3.7%), 올해 1월(3.6%), 2월(3.7%)까지 5개월간 3%대를 유지했었다. 물가가 4%대 상승률을 보인 것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월급 빼고 모두 오른다”는 한탄을 실감케 한다. 석유류와 축산물, 농산물, 외식에 이르기까지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 힘들다. 소득은 높아지지 않는데 물가가 치솟으니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살림살이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최근 국제원자재 가격과 물류비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상당한 가운데 금리인상으로 자금 조달비용마저 높아져 채산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물가를 포함한 민생 안정 대책을 인수위에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물가상승은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변수가 많아 새 정부가 간단하게 대책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인수위가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역점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추경 편성을 두고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해 최대 50조원까지 거론되는 추경을 편성할 경우, 시장에 막대한 돈이 풀리며 물가 상승세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50조원의 추경 편성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시차를 두고 분산 편성하고, 경기 진작보다 물가 안정에 무게를 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경제의 안정적인 운용이 어렵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시중 유동성 회수가 중요한 만큼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고, 고유가와 관련해 서민·저소득층·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핀셋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물가잡기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김보수 중견기업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댓글
(0) 로그아웃